이게 바로 사랑일까? - 고은의 수영 라이프 리뷰
고은 (길드다)
수영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간다. 저번 달 31일 중 22일을 나갔으니 주에 평균 5.5일은 수영장에 간 셈이다. 수영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수영모자 쓰는 게 불편해서 머리를 적당한 길이로 다듬었고, 수영복 올이 나가면 안 되니 손톱도 열심히 자르고, 물살 가를 기운을 내기 위해 밥을 잘 챙겨 먹고, 새벽에 나가기 위해 잠도 잘 자고 그러다 보니 똥도 잘 싼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수영을 시작했지만, 수영하기 위해 체력을 기르는 본말전도의 상황에 이르렀다.
사람마다 잘 맞는 운동이 있다고 하던데, 내겐 그게 수영인 듯하다. 수영의 모든 것이 좋다. (이게 바로 사랑일까?) 수영장에 들어서면 나는 소독약 냄새도 좋고, 꾸밈 하나 없는 맨몸 벌거숭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고, 수영장 곳곳에 포진해 있는 말 많은 아주머니들의 수다도 좋다. 자유수영할 때, 아무 아주머니나 붙잡고 모르겠는 걸 물어보면 열심히 알려주신다. 그리곤 다들 이렇게 덧붙이신다. “에휴, 나도 할 줄은 몰라~ 이론만 알아 이론만~” 몇십 년 동안 수영장을 화장실 들르듯 다니신 분들이다. 강사님은 일주일에 2번 만나지만, 아주머니들은 매일 만나니 나의 진짜 선생님은 아주머니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물에 들어가는 일이다. 샤워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물기를 머금은 채 오들오들 떨며 차가운 수영장 물로 들어간다. 차갑고 무거운 물이 몸을 꾹 감싸면 뭍에서 몸을 조이던 수영복이 편안하게 몸에 맞는다. 수영장 물은 네모난 박스에 고여있지만, 늘 다른 모양으로 일렁인다. 정수되느라 물이 계속 돌고, 온도 조절 장치가 돌아갈 때면 해류(?)도 생기며, 사람들의 수나 수영방법에 따라 물결의 강도가 달라진다. 물살이 센 날이면 분위기에 이끌려 나도 파이팅 넘치게 수영하게 되고, 물살이 잠잠한 날이면 침착하게 수영하게 된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강한 물살은 강하게, 약한 물살은 약하게 가르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땐 물살을 이기는 대신 물살을 타고, 물살과 싸우는 대신 물살과 춤을 춘다. 몸에 힘을 빼고 물과 호흡하며 부드럽게 리듬을 타는 게 어찌나 행복한지, 수영하는 와중에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이게 바로 사랑일까?) 물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는다. 가끔 물과 춤을 추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물과 싸운다. 숨을 쉬러 고개를 들 때마다 물이 입으로 밀려오는 걸 보면, 숨이 모자라 머리가 저릿해질 정도로 숨이 가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앞으로 가기 위해, 살기 위해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간다.
업킥과 다운킥, 풀과 글라이딩, 유선형 자세와 코어…. 수영은 겨우 4개의 영법밖에 없는 주제에 연습할 건 평생 해도 모자를 정도로 많지만, 요즘엔 ‘힘 빼기’ 연습을 하고 있다. 여러 방법을 사용해봤지만, 가장 효과적이었던 힘 빼기 연습 방법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들에게 “제가 이걸 잘 못하겠는데…”하고 말을 붙이거나, 강사님한테 “못하겠어요!”하고 잡아떼고 구박을 받고 나면 수영할 때 긴장이 풀리면서 과한 힘을 주지 않게 된다. 수영장에서 조금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아주 즐겁다. 수영장 밖에서도 못하겠다고 잡아떼면 좀 더 유연한 마음을 갖게 될 수 있을까?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