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와 우주소년, 흥? 망? 성? 쇠?
김현민 (동네서점 <우주소년> 운영 스텝)
망년회를 준비하며
12월 18일 우주소년에서는 망년회를 했다. 망년회를 준비하며 우리는 한 해 동안 발행했던 월간지의 에세이들을 엮어 문집을 만들고, 친구들을 대접할 간식과 품에 안길 선물들을 고민하며 바쁘게 지냈다. 흔히 쓰이지 않는 ‘망년회’라는 말을 쓰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매년 연말보고회를 해왔는데, 우리가 그 행사를 해온 형식과 연말 ‘보고회’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른들을 앞에 두고, 도달해야 하는 곳이 있는 것처럼 회계와 앞으로의 방향성을 발표하고 싶지 않았다. 사전에 ‘망년회’를 검색하면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으로 베푸는 모임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2021년은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괴로움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망년회라고 이름 붙이고, 행사 구성을 대폭 수정하게 되었다.
먼저 우리는 그들에게 ‘증명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전의 연말 보고회에서는 우리의 월급이 얼마나 늘었는지, 우주소년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지 증명하려고/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증명하려는 습관이 남아있는 우리에게는 이걸 깨닫는 것이 중요했다. 난 망년회에 올 사람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결코 이 자리가 평가회가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칭찬 없이도 단단한 사람이고 싶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이런 말이 필요하다.) 부족한 점도, 앞으로 해나가야 할 과제도 이미, 제일 잘 알고 있으니. 사랑과 용기는 언제나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주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를 먼저 들려주고 싶었다. 불러야 될 것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우리가 만나면 어떻게 헤어지겠어
가볍게 한 시간만 하자! 라고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하루 종일 놀았다. 망년회가 시작 전에는 마을의 방과 후 프로그램 ‘모두방과후’ 아이들이 놀러왔다. 작년 한 해 동안 모두방과후 아이들과 우주소년에서 글쓰기, 그림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 경험은 즐거운 이야기로 우리에게 남아있었다. 한편으로는 망년회 행사에 어린이가 오면 뭐 어때!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고작 4명의 아이들이 왔는데 난방을 해도 추웠던 서점이 금방 더워졌다. 손님이 있건 말건 상관없이 바닥을 구르고, 흥분해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이 내 긴장을 풀어주었다.
행사가 시작하는 시간이 되니 슬슬 사람들이 왔다. 행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마을에서 활동하는 어른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자퇴하고 맨날 서점에 오는 륭이, 동천동에 살다가 집이 멀어져서 오랜만인 은교, 학교 다니느라 바쁜데 꾸준히 서점 뜨개모임에 오는 예슬, 우주소년 멤버들을 사랑하는 건영, 줌바댄스를 함께하게 된 우현, 맨날 먹을 것 갖다 주시는 미르 아저씨, 서점에 두 번째로 와보는 손님 ... 이렇게 다양한 구성원의 연말 행사는 처음이라 기분이 묘했다. 그들은 긴 시간동안 자리를 지켜주었고, 들어주었다. 나는 긴장하면 예의바르게 굴려고 애쓰다 내가 원하는 것을 자주 잃는 편인데 친구들이 앞에 있으니 좋은 건 좋다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문득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는 어느 책의 문장이 떠올랐다. 우주소년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내게 어떤 것이었는지 말로는 영영 다 표현해내지 못할 거다. 하지만 그 시간동안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는 건 분명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오랫동안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우주소년은 우리에게 일터이며 노는 곳이다. 함께 일하는 조은, 시윤, 동희, 민서와는 직장 동료이며 친구다. 우리는 이 관계를 넘나들며 친구로 서로를 대하고 동료로 함께한다. 어떨 때는 동료로 서로를 대하고 친구로 함께한다. 이제는 이 공간이 나에게만 중요한 곳이 아니라, 마을의 다른 친구들에게도 중요한 곳이라는 것을 안다. 바쁘게 사느라 만나려면 어렵게 시간약속을 해야 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 오면 언제든지 우리가 있고, 따뜻한 온기가 이 공간을 지키고 있다는 걸 내 친구들은 알고 있다. 마을에서 자라온 친구들에게 마을이 가진 의미가 이 공간을 통해 달라졌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일만큼이나 이 공간을 통해 친구를 만들고, 친구들이 이곳에서 온기를 느끼고, 언제든지 그 친구들과 놀 수 있는 힘을 가지는 것도 나에겐 중요하다."
- <2021 우주소년기 문집 : 오래 들어주고 싶다> 들어가는 글 중
우리는 어떻게 끝나게 될까
"이 서점은 어떻게 끝나게 될까? 망할 때까지 서서히 지쳐가는 게 아니라 우리의 상태와 힘을 꾸준히 재고하고 얼마든지 그만둘 용기를 가질 수는 없을까? 혹은 정말 이 서점을 통해 우리가 자립할 수는 없을까? 서점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이 두 가지 고민이 오간다."
- <2021 우주소년기 문집 : 오래 들어주고 싶다> 들어가는 글 중
아젠다 리뷰를 쓰려고 시작한 글에서 길드다의 이름이 이렇게 늦게 나오다니. 우주소년 얘기가 길었다. 길드다와 우주소년은 동천동에서 희귀한 청년단체라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아주아주 많이 다르다. 각 단체가 하는 일도, 구성원의 특징도 너무 다르다. 우리는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둔 것 치고는 별로 얽히게 된 적이 없다. 길드다만 흥망성쇠를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소년도 열정페이를 감수하지 않았다면, 동네에 대한 환멸을 금새 까먹지만 않았다면 이미 오래전에 없어졌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이 동네를 떠날 궁리를 한다.
앗, 그런데 나는 길드다에 의해 자주 자극받는다. 예를 들면, 아젠다가 첫 발간호를 읽고 우주소년 멤버들에게 월간지 리뉴얼하자고 닦달해서 더 나은 월간지를 만들고 있다던가. 길드다 워크숍에 간 날 34쪽짜리 워크숍 안건지에 충격 받아 우주소년의 미숙한 회의체계를 구박하고, 뭔가를 만들려고 애쓰다 실패한 일들이 떠오른다. 결국 리뉴얼된 월간지도 마음에 들고, 우주소년이 내 마음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는 점에서 길드다를 통해 성장한 면이 있다.
나는 길드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왔을까?(아젠다에 글을 두 번이나! 싣긴 했다) 우주소년은 길드다와 어떤 우정을 가져왔나/가질 수 있을까? 나에게는 잘하고 있다고 사랑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한데, 길드다도 그럴까? 갑자기 무진장 궁금해진다. 길드다와 우주소년은 비슷한 점이 별로 없지만 쉽게 말로 설명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나는 그 지점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길드다와 우주소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우주소년이 길드다에게 좀 더 치대고 싶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길드다가 해온 일들이 이 세계의 일부를 돌보았다는 것이다. 당신들이 이 세상의 일부를 지켰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