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성처럼 나타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 <아케인Arcane> 리뷰

 우현 (길드다)





 나는 14살 때부터, 지금이 23살이니까 거진 10년 전부터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 이하 LOL)라는 게임을 해왔다. LOL이 한국에 정식 서비스 된 지 11년 정도 되었고, 초창기부터 게임 커뮤니티에서의 영향력이 컸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LOL은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는 ‘탑’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은 10년 경력의 LOL 게이머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매년 동시 시청자 수 2억 명을 돌파하는 E-스포츠 시장의 규모를 앞세워 다양한 장르의 게임과 산업으로 확장하고 있는 LOL은 한국 10-20대 남성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문화가 되었고, 심지어 ‘롤 학원’이나 ‘롤 과외’ 같은 것들도 생겨나는 걸 보면, <스타크래프트>(Starcraft) 이상의 ‘국민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5:5 전략 대전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


  그리고 지난 11월, LOL이 벌이고 있는 다양한 사업 중의 일부이자 LOL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아케인Arcane, 2021>이 넷플릭스에 공개됐다. 솔직히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전혀 흥미가 안 생겼다. LOL은 스토리가 정교한 게임이 전혀 아니고, 딱 봐도 넷플릭스의 상승세와 LOL의 이름값을 앞세운, ‘팔릴 것 같으니 만든 것’ 같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려 6년 동안 공을 들여 제작했다는 이야기와, 굉장히 재밌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평생 관심 없던 넷플릭스에 계정을 빌려서 접속하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계정을 공유해준 고은에게 감사를….

 


  넷플릭스와 3막 구성

  우선 나는 드라마를 정말 안 본다. 내 의지로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즌 별로 공개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나는 웹툰처럼 매주 한 에피소드가 공개되는 줄 알았다). 아케인은 3화씩 3막, 총 9화로 구성돼있었는데, 나에겐 이런 구성부터가 좀 신선했다. 한 막을 보고 나면 다음 막은 안 보고는 못 배겼다. 그만큼 절묘하게 끊어져 있고, 그만큼 재밌었다. ‘오프닝 넘기기’ 기능도 정말 유용했고...ㅎ 

  반면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한 회차가 끝날 때, 막이 끝날 때, 특히 마지막 화에서는 사실 어느 정도의 정적과 여운이 절실했다. 그러나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다음 화 시청’과 ‘비슷한 작품 추천’ 기능은 내 여운을 망가뜨렸고, 좀 불쾌하기까지 했다. 



  부족했던 게임 속 서사에 날개를 달아주다

  이제 작품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보자. 나는 원작에 대한 애정이 있는 만큼 원작의 캐릭터를 어떻게 녹여 냈는가와 부족한 원작 세계관의 디테일을 어떤 식으로 살려 나갈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탁월했다. 게임에선 앙숙 정도로 등장하는 ‘징크스’와 ‘바이’가 사실은 끈끈한 친자매였다는 것과 둘의 사이가 틀어지는 과정을 나름 매끄럽게 잘 살렸다. 오히려 부실했던 원작 캐릭터에게 디테일한 서사를 통해 날개를 달아준 느낌. <아케인>의 성공에 맞춰 LOL 스토리도 동시에 수정되고 있는 걸 보면 게임 스튜디오가 해내지 못한 일을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와 힘을 합치면서 완성해가고 있는 느낌이다.

  

▲ <아케인> 포스터. 중앙의 파란 머리 여성이 주인공 '징크스', 붉은 머리 여성이 '바이'다.


 이밖에도 게임에서는 평면적인 선역 혹은 악역으로 그려지던 캐릭터들이 도시의 분열과 계급 차이, 국가 정치 같은 상황 속에서 다양한 고민들을 거치고, 변화해가는 과정들이 좋았다. 그 과정이 객관적으로 매끄럽고 좋았다고 평가할 순 없지만, 원작 캐릭터를 가지고 이정도의 서사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이런 점에서 원작에 대한 배경이나 이해가 없을 때는 조금 아쉬울 수 있겠다고 느끼기도 했다.



  애니메이션의 미래? 

 

▲ 미래가 더 기대되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포티셰 프로덕션'

  또한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역량이 높다고 생각되는 점은, 원작보다 오리지널 캐릭터들의 서사가 훨씬 깔끔하고 잘 빠졌다는 점이다. LOL의 이름값을 통해 성공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LOL의 도움 없이도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스튜디오 같아 보였다. 무엇보다도 3D 그래픽에 2D 느낌의 텍스쳐를 입힌 ‘카툰 렌더링’ 방식의 정수를 보여준 작화가 굉장히 훌륭했다. 나는 2D 애니메이션 특유의 타격감과 움직임을 좋아하지만, 그런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요즘의 애니메이션들은 모두 3D 그래픽으로 제작을 하는데, 3D의 노동 효율과 2D의 타격감, 움직임 연출을 모두 살린 방식이 카툰 렌더링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술이 나온 지는 꽤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각 장점들을 잘 살린 애니메이션을 많이 볼 수 없었는데, 작화와 연출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뽑았다. 비주얼부터가 훌륭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LOL 유저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괜찮게 볼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액션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강력히 추천하고, LOL 유저라면 재미없을 수가 없으니 어서 빨리 시청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