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스쿨 1년 해보고
김진선(광합성)
글쓴이 소개 : 2013년 10여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을 갖고 문탁네트워크에서 접속했다. 공동체에서 함께 공부하고 밥먹고 활동하며, 전일제 임노동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2030도시부족팀을 꾸려 ‘공부, 일, 놀이가 통합될 수 있을까?’ ‘그건 어떤 모습일까’ 탐색했다. 문탁에서 공부한 것을 양분삼아 2015년, 다른 방식의 일하기 모델을 담은 인터뷰집 <적당히 벌고 잘 살기>를 출간했다. 이후 인천 검암의 청년주거공동체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로 터전을 옮겨 6년째 지내고 있다. 일상에서 친구들과 함께 ‘좋은 삶이란 어떤 걸까? 그것이 가능한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를 연구해가고 있다.
1. ‘90년대생이 왔다’
2011년에 6명의 친구들이 한집에 살며 시작된 우동사는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30대 초반에 처음만나 시작했으니 친구들은 이제 사십 줄에 들어섰다. 불혹이라니 이제 ‘청년’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어색해졌다. 함께 사는 맛이 좋다는 소문에 친구들이 셰어하우스에 합류하거나 동네로 이사 오는 지인도 늘어 오십 명 남짓의 친구들이 ‘우동사’ 라는 지붕아래 가깝게 지내고 있다. 그 중에는 90년대생 다정, 수정 자매가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 자매님들이 ‘우동사 언니오빠들이 좋긴 한데, 너어~무 언니오빠들이라 좀 어렵다. 동네에 또래가 생겼으면 좋겠다’ 노래를 불렀다. 의도하지 않아도 언니 오빠들 눈치를 보거나 상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것 같단다. 급기야 ‘90년대생이 온다’ 라는 타이틀로 공개모임도 열었다. 페북 공지를 보고 평소 우동사에 관심 있던 어린(?) 친구들이 참여했다.
사실 다수정 뿐 아니라 나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더 많은 20대 청년들이 우동사에 접속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우동사에 함께 살면 생활비를 꽤 줄고 자연스럽게 돈을 벌어야한다는 압박감에서 조금은 놓여날 수 있다.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번다고나 할까. 나도 그랬지만 꽤 많은 청년들이 ‘어떻게 돈벌지’ 하는 체화된 불안감을 갖고 산다. 우동사에 살면서 그런 막연한 불안이 줄어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굶어죽지는 않겠지’ 하는 근거 있는 자신감이랄까.
사실 그런 경제적인 유용함보다 더 맛보았으면 하는 것은 든든한 인간관계이다. 뭐든지 상의하고, 언제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데서 생기는 마음의 안심이 있다. 불안을 걷어내고 원하는 삶을 탐색하는데 있어, 우동사의 관계망은 꽤 유효하다.
2. 관계를 맺어가는 능력, 소통과 공감
이전에도 ‘가:출(가벼운출발)’이란 이름의 3개월짜리 공동주거 체험프로그램이 있었다. 나도 ‘가출’을 통해 우동사에 합류했다. 나처럼 우동사에 남는 이들도 있고, 함께 사는 게 너무나 부대껴서 나간 친구들도 여럿 있다.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살고 싶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셰어하우스로 살면 밥 먹고 씻고 잠자고 하는 모든 일상이 오픈될 수밖에 없다. 가족이 아닌 이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처음엔 서로에게 갖는 호감에서 시작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같이 지내는 게 점점 갈등이 일어난다.
청소부터 설거지 빨래 자는 시간까지 서로의 스타일이 제각각이다. 일상에서 수많은 ‘차이’가 드러나고 그것이 ‘불편’으로 느껴진다. 불편함은 억누르고 참는 방식, 혹은 상대를 탓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사실 전자도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속으로는 엄청 화를 내거나 상대에게 철벽을 치고 있는 상태이다. 참고 말하지 않으면 미움이 쌓이고 압력이 차서 어디선가 폭발하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경험은 타인과의 소통을 연습하는데 아주 좋은 기회이다. 어떻게 대화해가고 있는지, 어떤 오해들이 쌓이는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참거나 화내는 게 아니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길을 찾아가 본 경험이 우리 대부분은 별로 없다.
나도 6년간 함께 살이의 경험을 하며 알아진 것이 있다. 우리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을 잘 모른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알아채지 못한채 욕구를 억누른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는 더욱 알기 어렵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혹은 기대하는 대로 상대를 강제하고 싶어한다. 자신에 대해서도 상대에 대해서도 마음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다.
같이 살면 여러 좋은 점들이 많지만, 소통의 능력이 없으면 함께 살이는 고역이 된다. 관계맺으며 더불어 살기를 원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는 것이다.
20대 자매님들의 욕구와 이런 주제의식이 만나 20대 친구들이 우동사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열었다. ‘소통과 공감을 바탕으로 건강하고 지속가능하며 풍요로운 관계를 실현’하는데 관심 있는 20대 친구들을 모집했다. 2020년 11월, 그렇게 ‘반야스쿨’이 시작되었다.
3.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연마하는 곳, 반야스쿨
‘반야’는 불교적 용어로 '지혜(智慧)' 또는 '혜(慧)'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사물의 본래 모습을 있는대로 알려고 하는 작용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자각'에서 시작해서, 실제를 살피고 알아갈 수 있는 관점을 익히는데 중점을 둔 프로그램이다.
나와 상대를 탓하는 것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합니다.
상대의 말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면에 관심이 가는 대화를 익힙니다.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눈을 기릅니다.
규칙으로 서로를 속박하지 않고 자신을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장을 만듭니다.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현재의 조건에서 다음 장을 모색하는 습관을 기릅니다.
반야스쿨에서 목표로 했던 내용이다. 취지에 공감한 11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공동주거 생활을 기본으로 하며, 주 1회씩 책읽기 모임과 대화 미팅에 참여해왔다. 주로는 일상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을 들여다보며 ‘대화할 수 없는 상태’에 대해 연구해왔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생각 · 기분 ·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상태, 상대를 들을 수 없는 상태이다. 이론적인 분석이 아니라 갈등의 당사자들이 스스로를 돌이켜 내면의 갈등을 해소하는 경험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하고, 누구의 어떤 이야기도 순하게 들을 수 사람으로 함께 성장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반야스쿨, 우동사에서 사람들과 지내는 맛이 좋아 더 많은 사람에게 퍼뜨리고 싶고, (자신을 포함하여) 사람에 대해 더 알아가는 재미가 있어 함께 공부해가고 싶어서 시도해본 실험이었다. 반야스쿨에 와준 친구들과 알콩달콩 혹은 아웅다웅하며 나름 알차게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실컷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기회였구나 싶다.
4.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일년 과정으로 열었던 반야스쿨은 이제 한달 남짓 남았다. 돌아보자니 수많은 생각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났다. ‘소통과 공감’을 연습해보고자 접속해온 친구들이 열한명이나 된다는 것 자체가 참 신기방기하다. 미팅이나 워크샵에서 이야기 나누면서 서로에 대해 조금씩 다가간 시간들도 소중하다. 좀 더 알게 되기도 하고 동시에 더욱 모르게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자각’이라는 목표치가 너무 높았을까? 프로그램을 열었던 스탭들은 충분히 준비가 되었을까? 제대로 연구하면서 충분히 소통하면서 즐기면서 해왔을까? 등등 여러 가지 검토해보고 싶은 이슈들도 있다.
올해 일 년이 서로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각자의 내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더 궁금해진다. 이제 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