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왔습니다.
수아
글쓴이 소개 : 안녕하세요. 18살에 문탁네트워크에 들어와 3년정도 공부를 했고 그 중 1년간은 길드다에서 함께 활동도 했었던 수아라고 합니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공부와 활동은 못 하게 되었지만 멀리서 길드다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응원하던 중 ‘길드다 친구들’ 코너에 실을 근황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체감상 오조 오억년만에 글을 써보게 됐네요. 마침 제가 최근에 이사를 해서 이사한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살고 있던 오래된 투룸의 월세계약이 만기될 무렵 우리는 열심히 다음 집을 찾아보았다. 조건은 신혼부부 전세대출이 최대치로 가능할 것. 주차가 가능할 것. 남편 직장과 가까울 것. 금액이 1억5천 이하인 투룸 전셋집일 것. 하지만 찾아본 매물들은 반지하이거나 집 내부가 너무 구리거나 컨디션이 괜찮다 싶으면 집주인이 대출을 꺼려해서 원하는 집 찾기가 쉽지 않았다. TV에 나오는 신혼집들은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한숨이 나왔지만 뭐 어떡해. 결국 집주인에게 2년 더 살겠다고 연락을 하고 전셋집으로 옮기는 건 포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소식이 왔다.
꿈에 그리던 집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남양주별내 A24블록 행복주택 OO동 OO호에 당첨되셨습니다.’
청약통장 있고 신혼부부인데 행복주택 신청하면 어디든 되지 않을까 싶어 넣어본 곳이었다. 보증금 1억에 월10만원의 신축 아파트, 곧 4호선 지하철도 들어와 교통편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서울에서 멀어지는 게 못내 아쉬워서 문자를 받고 바로 기뻐하지는 못 했다. 며칠간 대출이자, 관리비, 월임대료 등등 계산해보다가 우리 형편에 언제 새 집에 살아보겠나 싶어서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결정하고 나서부턴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계약 하고 은행가서 심사받고 대출받고 입주청소하고 이사 오기까지 한 달 정도 걸렸다. 혹시나 대출이 안 되면 어쩌지 조금 쫄리기도 한 한 달이었다.
20년 넘은 오래된 빌라에 인테리어는커녕 월세라 못도 박지 못했던 한을 여기서 다 풀었다. 베란다에는 인조잔디를 깔아 홈캠핑 스타일로 꾸미고 안방은 책상도 침대도 화이트로 배치해 모던한 느낌을, 부엌 조리기구도 색을 맞춰 깔끔하게 정리했다. 거실에는 하얗고 하늘하늘한 커튼도 달았다. 인스타 감성의 소품들과 향기로운 캔들로 공간을 채우니 딱 내가 꿈에 그리던 그 집이었다.
별내/1801/신혼
모든 게 처음이라 정보가 필요했던 우리는 입주자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채팅방에서는 닉네임/동/신혼or청년으로 이름을 적고 활동한다. 260명대의 생각보다 많은 입주자들이 정보를 나누고 음식이나 물건도 나눔하고 있었다. 나눔 받는 분들은 음료수 한 캔이나 스팸 하나라도 들고 가 감사를 표해 훈훈한 장면이 펼쳐졌다. 나 또한 구매한 냉장고가 늦게 와서 잠시 음식을 보관할 곳이 필요했는데 같은 동 이웃분이 캠핑용 냉장고를 빌려주기도 했다. 에어컨 타공 같이 소음이 나는 일을 할 경우에는 톡방에 미리 양해를 구했다. 나는 한동안 남편과 친구들에게 이게 바로 오픈채팅방의 순기능이라고 톡방과 이웃들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집도 좋은데 이웃도 좋다고. 하지만 오픈채팅방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밤에 널어둔 빨래에 고기냄새가 베어서 힘들었다고 늦은 시간에 베란다에서 음식을 해먹지 말아주었으면 한다는 장문의 글이 올라왔다. 공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내 베란다인데 왜 못 하게 하냐, 배려를 강요하는 거 같아서 기분 나쁘다. 늦게 퇴근한 사람들은 음식도 못 먹냐. 라며 반박을 했고 결국 두 편으로 갈라져 말싸움을 했다. 각자 자기만의 배려에 관한 가치관을 내세웠고 길어지는 말싸움에 사람들은 하나 둘 방을 나가며 결국 방장에 의해 오픈채팅방은 폭파되었다. 금새 새로운 방이 생겼는데 다들 다툼의 여지가 생길만한 단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며 한껏 ‘예의’를 지키며 말을 하고 있다.
이게 한계구나 싶었다.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같은 아파트에 비슷한 형편이라는 이유로 동질감이 생기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흔쾌히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기에 한 번 틀어지면 관계를 쉽게 끝낼 수 있다. 방장이 채팅방을 끝내면 모든게 신기루처럼 사라지던걸. 그리고 다시 채팅방을 만들면 다들 다른 닉네임으로 바꿔 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이게 참 괴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람들이 나에 대해 모른다는 게 마음이 편하기도 하다. 이웃들과 하하호호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나에 대해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랄까. 아마 이런 마음에 나만의 공간을 침해하는 소음이나 냄새가 더 예민하게 느껴지는 거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다사다난 하긴 해도 전에 집보다 월등히 좋은 집에 온 거라 매우 행복해하며 지내고 있다. 엄마는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으니 지금을 마음껏 즐기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동네에서 새 시작하는 기분으로 새로운 일정을 짜봐야겠다. 취미로 배우기 시작한 벨리댄스 협회에서 아마추어 대회도 나가고 내년에는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도 따고 여러 가지 해볼 생각이다. 하지만 일단은 집에서 쉬자...Zzz 아 맞다, 집들이 오실 분은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