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태양은 정지해 버렸다"
김지원
기관사는 계속 중얼거렸고 아이들은 옛날로 돌아 간 느낌이었다. 트리든 씨는 젊고 멋져 보였고, 눈은 작은 전구처럼 파랗게 빛났다. 하루가 그저 무심하고 편하게 흘러갔다. 주위는 온통 숲이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태양은 정지해 버렸다. 트리든 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엄청난 바늘이 공기 속에서 한 땀 한 땀 뜨고 또 떠서 보이지 않는 금빛 무늬를 수놓고 있었다. 벌이 윙윙대며 꽃에 앉았다. 전차는 마법에 걸린 증기 오르간처럼 서 있고 햇살이 닿는 곳은 달아오르고 있었다. 청동 냄새를 풍기는 전차 곁에서 그들은 잘 익은 버찌를 먹었다. 그들의 옷에 스민 밝은 전차 냄새가 여름 바람에 퍼졌다.
새가 울면서 하늘 위를 날아갔다. 누군가가 몸을 떨었다.
트리든 씨가 장갑을 꼈다.
“자, 갈 시간이 되었다. 부모님들이 내가 너희들을 다 납치해 간 줄 알겠다.”
전차는 아이스크림 가게 안처럼 조용하고 시원했으며 어두웠다. 아이들은 조용히 의자에서 몸을 돌렸다. 의자의 녹색 벨벳 천이 바스락 댔다. 이제 그들은 고요한 호수, 버려진 악단의 무대, 다리를 등 뒤로 하고 앉았다. 건너갈 때면 음악 소리를 내는 다리였다.
뱅! 트리든 씨의 발 아래서 종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아이들은 태양이 지고 꽃이 시든 초원과 숲을 지나 마을로 돌아왔다. 트리든 씨가 아이들을 내려 주려고 그늘진 거리에 멈추자, 도시의 벽돌과 아스팔트와 나무가 전차를 에워싸는 것 같았다.
찰리와 더글러스는 마지막까지 전차 입구에 서서 접히는 계단, 숨결 같은 전기, 청동 운전대 위에 있는 트리든 씨의 장갑을 지켜보았다.
더글러스는 초록색 이끼 같은 의자 천을 손가락으로 만지작대며 은색, 동색, 포도주 색깔이 섞인 천장을 보았다.
“자…… 안녕히 가세요, 트리든 씨.”
“잘 가라, 얘들아.”
“다시 봬요, 트리든 씨.”
“그래 다시 보자.”
대기 중으로 부드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주름진 혀를 집어넣으면서 조용히 전차 문이 닫혔다. 그 진한 귤색 전차는 늦은 오후의 태양보다 밝은 황금색과 레몬 색을 번쩍이며 천천히 가다가 바퀴 소리를 내며 모퉁이를 돌더니 멀리 사라져 버렸다.
“스쿨버스!”
찰리는 모퉁이로 걸어갔다.
“이제 학교에 지각할 수도 없을 거야. 버스가 집 문 앞까지 와서 데려갈 테니까. 이제 다시 지각은 없을 거야. 상상만 해도 악몽이군. 더그, 생각해 봐.”
그러나 더글러스는 잔디밭에 서서 내일이 어떨지 상상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은빛 철도 위에 뜨거운 타르가 쏟아 부어질 것이고 그래서 이 길로 전차가 다녔다는 사실도 모르게 될 것이다. 아무리 깊이 철도가 파묻혀도 그가 그 철도를 잊는 데는 수 년이 걸리리라. 가을, 봄, 아니면 겨울 어느 날 아침에 깨어, 창가로 가지 않고 따뜻한 침대 깊숙이 편안하게 누워 있어도 멀리서 희미하게 전차 소리가 들리리라.
그리고 아침에 거리의 모퉁이에서, 대로 위에서, 일렬로 서 있는 시카모어와 느릅나무와 단풍나무 사이에서, 삶이 시작되기 전 경적 속에서, 집 앞을 지나가는 낯익은 그 소리가 들릴 것이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처럼, 십여 개의 금속통이 구르며 내는 우르르 소리처럼, 새벽에 혼자 날아다니는 잠자리의 소리처럼, 그 소리는 회전목마 소리처럼, 작은 전기 폭풍처럼, 파란 번개처럼 다가왔다 사라져 갈 것이다. 전차의 종소리! 전차가 계단을 내리고 올릴 때 내는 소리, 소다수 통에서 나는 것 같은 씩씩 소리. 그리고 전차가 숨겨진 철도를 따라 어딘가 파묻힌 고적지로 여행할 때 다시 꿈이 시작된다…….
“저녁 먹고 깡통차기 할래?”
“그래.”
더글러스가 말했다.
“깡통차기 하자.”
- 레이 브래드버리, 『민들레 와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