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힙합’은 없다고 주장하는 진짜 힙합퍼 송우현의 우승을 축하하는 리뷰

 

정군 (『세미나책』, 『다른 아빠의 탄생』 저자)



1. 필자 소개 : 글쓴이 정군은 아이를 돌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세미나를 하는 사람. 현재는 직장인, 내년부터는 ‘프리랜서’가 될 예정입니다.

2.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아젠다 필진이기도 한 코코펠리의 <전태일 힙합 음악제> 우승을 다룬 아젠다 16호 <본인이 우승을 차지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 리뷰>에 대하여 필자께서 보내주신 독자 리뷰임을 알려드립니다. 윗줄의 파란색으로 표시된 링크를 클릭하시면 지난 호의 <본인이 우승을 차지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 리뷰>를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예전에.... ‘아주 먼 옛날’은 아니지만, 대충 20년쯤 전에(세상에...) ‘대학생 웹진’이라는 걸 2년쯤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웹진’이라니……. 그 웹진을 만들자고 모인 전원이 문과였던 데다, 모두 ‘인터넷’이라곤 이메일을 쓰고, 보내고, 받고, 가끔 블리자드 배틀넷에 접속하는 게 전부였는데, ‘우리가 진을? 미쳤나봐’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초창기엔 ‘A4지에 인쇄해서 뿌리는 게 어떨까?’ 같은 일천구백팔십년대에나 나올 법한 의견도 있었다. ‘등사기는 있냐?’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누구나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해주는 ‘나모 웹 에디터’가 있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뭐 어쨌든 그런 사연으로 나는 길드다 친구들이 [아젠다]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원래 반가워했어야할 정도보다 더 반가워했다. 그런데, 이제 [아젠다] 16호 리뷰를 써야 한다니! 어쩐지 ‘리뷰 쓴 독자’라는 감투를 쓴 기분이랄까. ‘네, 저 여러분의 팬입니다’. 게다가 나는 ‘길드다’를 어떤 이유에서인지 흠모해 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코코펠리를 특히 더 흠모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뭐든지 리뷰 : 본인이 우승을 차지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 리뷰]에 대한 리뷰다. ‘코코펠리를 흠모’한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광팬’까지는 아니고, 매달 [아젠다]를 받으면 ‘월간 김왈리’1)부터 클릭하는 정도의 팬이다. 유튜브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는 건 가끔 까먹지만, 그래도 생각나면 클릭한다. 사실 나는 이른바 ‘힙합’이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이런저런 음악들을 ‘찾아가며’ 30년쯤 ‘열정적인 리스너’로 살아왔고 이제는 ‘취향’마저 거의 없어질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힙합’은 여전히 ‘음…,흠……’ 하게 된다. 왜 그런걸까? 몇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음악에서 ‘가사’를 통해 ‘메시지’를 ‘듣는’ 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힙합 음악의 그 ‘가사’라는 걸 제대로 듣기엔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자주 열 받는 편이고 돈도 중요하지만, 그 감정까지 이르는 길이 좀 다르달까? 그러니까 ‘감수성’이 좀 다르다는 말이다. 예가 좀 안 맞기는 하지만, 애절한 가사로 이별을 노래하는 걸 들어도 ‘야 그거 몇 년 있다가 또 할 텐데 뭘 그렇게 슬프냐’ 같은 식이 되어버렸달까?

  ‘가사-메시지’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랩’은 나에게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문학’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힙합’과 ‘민중가요’는 내 마음 속에서 만큼은 통하는 구석이 있다. 그랬는데, [뭐든지 리뷰 : 본인이 우승을 차지한 <전태일 힙합 음악제> 리뷰]를 보고 어쩐지, 그 음악이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두 번째 절 ‘트렌디 래퍼’, ‘언더 래퍼’, 그리고 ‘아마추어 래퍼’ 이야기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스토리’다. ‘스토리’는 추상적인 ‘음악’, ‘힙합’, ‘랩’, ‘메시지’ 같은 무형의 개념들에 신체성을 부여한다. 그저 ‘음…,흠……’하게 되는 음악에 ‘서사’가 붙는 ‘몸’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음악’과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래서 나는 그 ‘리뷰’를 다시 읽고, 유튜브에서 ‘음악제’ 영상을 여러 번 다시 보았다. 길드다 송우현이 이야기한 ‘트렌디 래퍼’가 저 친구인가, 탈색래퍼는 저 양반이군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더는 ‘음…,흠……’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그들이 말하려는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그 때부터 방송 화면상에 뜨는 ‘자막’이 거슬렸다는 점이다. ‘자막’이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이야기’를 가리는 느낌이었다. ‘메시지’는 ‘가사’와 포개어지지 않는다. ‘스토리’는 그렇게 ‘메시지’의 전모를 드러내 보여준다. 녹화 당일 코코펠리가 쏴준 링크를 통해 ‘음악제’를 보기는 했지만, 그의 ‘리뷰’를 읽고서야 진짜로 본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일들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젠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 그 동안 내가 [아젠다]를 대하는 태도는 반쯤은 ‘기부’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내 마음 속 어딘가에 ‘자막’이 나오고 있었던 셈이다. ‘문탁 청년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글을 써서 보내준다’ 뭐 이런 내용일 텐데, 일단 여기서 ‘청년’을 빼기로 했다. ‘청년’이란 어떤 점에서 보자면 나이에 근거한 붕 뜬 개념일 텐데, 그걸 의식하다보면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청년 뭐시기’ 딱지를 붙이게 된다. 그 현상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고, 어쨌거나 나는 그렇게 그들에게 붙여놓았던 라벨을 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스토리’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뭘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그 ‘뭘’로 승부를 봐야만 한다. ‘송우현’이 랩 하나 들고 맨몸으로 ‘우승’까지 간 것처럼 말이다. 아마, 다음 호부터 [아젠다]를 ‘진짜로’ 보게 될 듯한데, 남은 몇 달 잘 살펴보고 내년 구독을 결정해야지. (끝)






 각주 

 1) 코코펠리의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김왈리’는 코코펠리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누가 진짜 ‘송우현’인가? <제2회 전태일 힙합 음악제>의 우승자는 코코펠리인가, 김왈리인가, 송우현인가? 지각불가능하게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