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6411 : 영화 <노회찬 6411> 리뷰
지원 (길드다)
내가 처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4년 4월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아마 젊은 세대 중 많은 이들이 나처럼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거다. 대통령의 말, 국회의원들의 대처, 각종 시민단체들 혹은 시민들의 운동, 그리고 당사자들의 목소리,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며 뉴스를 찾아보고, 듣고, 읽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문제가 뭘까?”,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것 같다. 나아질 수 있을 거라는 답을 찾아 헤맸다. 그런데 그런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듣고 보는 뉴스들은 죄다 너무 어려웠다. 말들 앞에 이해관계들이 있었고, 행동보다 그 자신의 위치들이 더 중요했다. 난 그런 것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찾던 것과 달리, 나는 다음의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통령이라는 위치가 가지는 의미, 정치인 혹은 정당들의 이해관계, 시민 혹은 시민단체들의 무력함…. 정치를 이해하고자했던 나는, 반대로 정치혐오를 이해하게 되었다. 애도의 욕망이 분노가 되어가던 즈음, 정치패널 노회찬을 만났다.
“산소통 메고 구조 활동 할 계획이 아니라면 정치인, 후보들의 현장방문, 경비함 승선은 자제해야 합니다. (…) 중앙재난본부 방문으로 또 하나의 재난을 안기지 맙시다.”
- 2014년 4월
같은 시기, 그는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한 2013년의 대법원 판결로 인해 국회의원직을 상실하고 진보정의당 당대표직에서도 물러난 상태였다. 그런 그의 상황이 방송 패널로 더 자주 그를 만날 기회가 되었다. 그는 SNS, 팟캐스트, 각종 방송 인터뷰와 패널로 많은 곳에 등장해 목소리를 냈다. 내가 특별한 정치적 지식이 없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말들이었다. 난 정치인 노회찬이 궁금했고, 그를 ‘덕질’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삼겹살 불판론’, 법 앞에 ‘만 명만 평등론’, 거꾸로 타는 ‘보일러식 복지 공약’…. 그의 비유, 그의 해설, 그의 제안을 통해 정치를 좋아하게 되었다. 잠깐이지만,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믿음을 가졌다. 20대 국회로 복귀한 정치인 노회찬 역시 나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치를 하는 사람이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은 2014년 4월의 사건을 “잊지 않겠다”는 말에 대한 응답이었다. 영화에서 그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최봉근씨가 말하는 것처럼, “아는 것과 하는 것, 겉과 속이 일치하는 드문” 사람.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정치에서 “책임responsibility이란 응답하는 것respond”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책임을 지는 정치인이라고 느꼈다.
2018년, 이른바 ‘드루킹’ 사건이 불거졌고, 내가 보기엔 엉뚱하게도 그 불똥이 노회찬에게로 튀었다. 그런데 7월, 그가 세상을 떠났다. 일들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그의 장례식 뉴스를 매일 봤다. 세월호 유가족들,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 쌍용차 노동자들…. 내가 정치를 통해 충분히 대변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이들, 노회찬이 응답하던 이들이 조문을 이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여러분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 2018년 7월
“무엇이 잘못된 걸까?” 난 다시 질문했다. 나에게 이것은 2014년 4월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이해되지 않는 사건이었다. 난 쏟아지는 뉴스와 칼럼을 읽고 또 읽었다. 누군가는 사건은 덮어두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또 누군가는 그의 죽음은 덮어두고 사건을 파헤쳤다. 그러나 어디에도 적당한 해설이 없었다. 노회찬이 잘하는 것이었다. 나 같은 사람들도 알기 쉽게, 재미있게 말해주는 것. 그러나 그가 없었다. 그 자리에 물음표를 넣어놓은 채로 3년이 흘렀다. 영화는 최봉근씨의 말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남았을 그 물음표에 어떤 답을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지막에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불일치가 생긴 것이다. 그 불일치를 목숨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난 영화의 다른 곳에서, 그의 죽음을 이해할 조그마한 단서를 찾았다. 과연 최봉근씨의 말처럼 그러한 불일치가 그의 삶 ‘마지막’에 생긴 것이었을까? 영화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노회찬의 배우자 김지선씨의 목소리, 그리고 그가 권력을 강하게 원했다고 여러 번 강조하는 이정미의 인터뷰는 그 불일치가 언제나 그의 삶 가까이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김지선씨가 위태롭다고 느낀 그가 홀로 마신 매일의 소주 한 병, 밖에서와는 달리 집 안에서의 그의 말 없음.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과 진보정치가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생각들. 이런 것들이 그가 언제나 가지고 있던 불일치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순수하지 못한 강의료 4,000만원이 아니라, 그의 너무 순수한 원칙주의의 이상이 그 자신과 화해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어느 누가 모든 일치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한 이상 속에선 내가 혐오하던 정치가 그러하듯이 위치, 이해관계와 같은 것들이 중요해진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무력함을 만난다.
난 영화를 통해 얻은 단서를 가지고, 마치 잘 아는 옆집 아저씨인 것처럼 그를 좀 비난해본다. “당신은 그게 문제야”라고. 당신은 멋진 정치인이었지만, 좋은 동료나 배우자는 절대 아니었어.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거대양당의 책임 없는 태도가 어쩌면 당신 자신의 삶에도 있었던 거야. 그러나 그가 잠깐이나마 믿게 해주었듯이 질문을 다시 이어가본다. “나아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들의 불일치에 대해서 생각해봐야한다. 불일치는 없애버리거나 목숨으로 바꿀 일이 아니라, 마주하고 함께 할 일이다. 책임이란 응답이고, 그 응답은 6411번 버스의 노동자들, 가난하고 소외받는 우리 주변의 이웃들 뿐 아니라, 필히 우리 옆에 있는 사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나아간다는 것, 나아진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엔 그러한 불일치에 대한 응답이어야 하므로. 아저씨는 멈추지만, 저는 나아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