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공정함, 파이와 비빔밥 사이에서

 지원 (길드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2017. 5. 10.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공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특정 분야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경쟁하고 그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공정이며, 

(다른 하나는) 국민 한 분 한 분의 생애 전 주기의 기회의 공정이다.” 

2021. 6. 29. 윤석열 전 검찰총장,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


“(내가 바라보는 2021년 현재 시대정신은)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세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교육 분야에서부터 ‘경쟁은 나쁘다’는 조류가 생겨났다. 

항상 경쟁이라는 단어 앞에는 ‘과도한’, ‘불필요한’, ‘무의미한’ 이러한 수식어가 붙었다.

 경쟁이 없는 사회를 겪다 보니 그것도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젊은 세대가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경쟁이 다시 한번 공정함의 가치를 불러올 수 있도록,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시대정신이 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2021. 9. 14. 이준석 국민의 힘 당대표, 전자신문 창간 39주년 기념 인터뷰 






  공평하고 올바른



  ‘공정’이 화두다. 그간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겨져 왔던 이른바 ‘MZ 세대’가 ‘젠더’ 등 특정 이슈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공정함’이라는 분석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거대 야당인 국민의 힘에선 공정을 기치로 내건 젊은 30대 당대표가 당선되었다. 3월 대선을 앞두고 경선 중인 대통령 후보 중 공정을 입에 담지 않는 후보는 없으며,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며 공정에 대해 말하지 않는 시사 프로그램도, 정치인도 없다. 

  젊은 세대가 ‘공정’에 움직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공정’이라는 개념을 통해 젊은 세대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일까? 나아가 ‘공정’이, 젊은 세대와 그들이 처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혹은 충분한 통로일까? 길드다 멤버들과 함께 공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지원 : 최근 ‘공정’이라는 단어가 각종 미디어에서, 특히 정치인들의 입을 통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다들 느끼셨을 텐데요. 이 단어 혹은 개념이 주로 청년들의 관심과 엮여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건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그만큼 불공정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일 테고, 특히나 이 불공정함을 가까이서 체감하는 것이 청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좀 가까운 데에서 시작해 볼까요? 아마도 이 중 정치에 가장 무관심할 우현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하는데…. 우현은 불공정함에 대한 경험이 있나?

  우현 : 시사나 정치에 관심이 없고 잘 몰라서, 미디어에서 공정이 어떤 맥락으로 다뤄지는지 잘 몰라. 그래도 개인적으로 불공정하다고 느꼈던 순간을 이야기해 보라면 예전에 ‘쇼미더머니’를 참가했을 때가 생각나는데. 워낙 참가자가 많아서 전날 새벽 3시부터 방송국 앞에 줄을 섰고, 그 시간에 줄을 섰는데도 이미 줄이 엄청 길었지. 그 당시 시즌이 예선전 관리를 엄청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새치기가 많아서 나처럼 정직하게 자리를 지킨 사람들은 대부분 엄청나게 오래 기다려야 했어. 그런데 내가 불공정함을 느낀 순간은 새치기보다도 유명 래퍼들이 자기 스케줄에 맞춰 차타고 현장에 도착하면 인터뷰 촬영하고, PD 손에 이끌려 맨 앞줄에 서는 장면이었어. 물론 방송이니 그런 면이 있겠지만, 너네만 스케줄 있냐….

 고은 : 우현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고등학교 동아리 면접 때가 생각나기도 해. 전체 학년 인원 80명 중 60명이 지원할 만큼 우리 학년의 거의 전원이 들어가고 싶어 하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한 해에 동아리 구성원을 남자 4명, 여자 4명, 총 8명만 뽑았어.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여자 후배들을 남자 선배들이 뽑은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 나도 뽑히긴 했지만(?) 불공정하다고 느꼈어. 

 명식 : 난 군대 가기 전 신체검사가 생각나는데. 그 즈음 내가 폐에 기흉이 생겨서 수술을 했었어.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원래는 폐 기흉이 공익 근무의 조건이 되는데, 그 당시 기흉을 가지고 장난질을 한 녀석이 있어서 기흉이 공익 조건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난 현역으로 가게 됐지. 조금만 일찍 갔으면….

 지원 : 안타깝네요. 세 명이 이야기 해준 경험의 공통점은 “동의할 만한 어떤 ‘기준’이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와 관련한 사례들인 것 같아요. 그럼 젊은 세대가 바라는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기준이 잘 지켜지는 사회를 말하는 걸까요? 사전에 ‘공정’을 찾아보면 ‘공평하고 올바른’이라는 정도의 정의가 나오는데…. 

  명식 : 넓은 의미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될 수 있다고 생각해. 우현이를 위해 간단히 맥락을 짚어 보자면 우리 사회의 공정 논의가 출발한 계기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1990년대 후반 IMF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김대중 정부의 노동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 전면화가 가져온 부작용이 이 논의의 출발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아. 한편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은 IMF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 빈부 격차 등 양극화를 심화시켰지. 주로 재벌 기업과 국가의 입장에서 전자의 경험이 자본주의적 능력주의를 부상시켰다면, 후자의 경험은 노동자들, 출발선을 문제 삼는 새로운 평등을 이야기하도록 촉구했어. 기회의 평등이지. 이걸 들고 나온 것이 노무현이고―그런 점에서 그의 학력은 일종의 상징으로 기억돼―그걸 다시 뒤집은 것이 이명박-박근혜지. 

  지원 : 박근혜 탄핵의 계기가 된 정유라 논란이나 최순실 게이트도 이렇게 본다면 공정의 틀 안에서 볼 수 있겠네.

  명식 : 그렇지.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공정이란 지금 갑자기 튀어나온 특별한 문제라기보다는 20년째 계속되는 문제라고 볼 수도 있어. 물론 이건 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왜 지금 공정인가?


  고은 : 명식이 짚어 준 맥락을 들으면서 최근 논의들에 대해 나도 궁금했던 게 있어. 사실 난 뉴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정’이 전혀 새롭게 느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너무 ‘올드’하게 느껴졌단 말이지. 내가 개인적으로 공정justice이란 개념을 처음 접했던 것은 10년도 더 된 일인 것 같아.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나, 대한민국을 강타했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나와 내 주변에 그러한 논의를 촉발시켰다고 기억해.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이미 당시에도 충분히 이루어진 거지. 그런데 지금 다시 공정이 핫한 키워드가 된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 걸까? 내 또래 혹은 나와 비슷한 세대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공정이라는 키워드에 호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진짜 호응하는 게 맞아?―만약 이준석이 길어 낸 공정 담론이 이준석을 당선시킨 거라면, 이준석의 어떤 점이 우리 세대를 자극한 걸까? 이게 내가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야.

  지원 : 어쩌면 명식이 말한 것처럼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20년 째 이어지고 있는 공정의 문제 틀로 간단하게 번역한 것이―의도했건 하지 않았건―이준석의 ‘킥’이 아니었을까? 

  명식 : 그렇지. 난 앞에서 이야기한 맥락에서도 여전히 설명이 가능하다고 보는데. 공정이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니 그것에 대해 다시 말하는 이에게 여전히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거지. 윤석열도 마찬가지 아닐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라는 이미지가 공정함을 대변하는 것 같지 않아? 이명박도 노무현과 다른 의미에서이긴 하지만, 능력주의로서의 공정을 기치로 내걸었지. 그런 점에서 보자면 이준석이 특별하단 생각이 들지는 않아. 사람들은 공정이란 깃발을 새롭게 드는 사람들, ‘진짜 공정’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 같은 세력의 손을 들어 주는 거지.

  지원 : 명식 말에 일정 부분 동의가 돼. 그런데 나도 고은의 질문이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있어. 사실 우리가 하는 공부의 맥락에서도 그렇고, 전통적인 정의론의 해법들이 사실은 어떤 한계에 봉착한 거잖아. 예를 들어 파이pie를 어떻게 나누는지가 중요한 이 문제 틀 속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어. 샌델의 책에도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맨 마지막에 가져갈 사람이 파이 조각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정의롭다는 분배의 정의는 친구들끼리 파이를 나눠 먹을 때는 유용할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거지. 우리가 함께 읽었던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차이의 정치와 정의』를 보면―공교롭게도 번역자가 조국 교수인데!―이런 식의 정의론을 비판하고 있어. 분배에 초점이 맞춰진 정의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는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고은 : 이렇게 이야기하면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조국 교수 딸의 입시와 관련한 문제가 대두 되었을 때도 나는 ‘그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라는 생각을 했어. 그것이 5-60대로 주로 구성된 정치권에서 큰 쟁점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내 주변 친구들에겐 오히려 큰 관심이 아니었어. 내 주변을 20대로 보편화할 수는 없겠지만, 지원 말처럼 우리는 그밖에도 불공정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있고, 이건 게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거지. 조금 더 이야기 해 보자면 아까 명식이 설명한 맥락에서처럼 공정이 단지 기회의 평등이라면, 공정과 평등은 늘 함께 다니는 친구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우리가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평등은 양적 평등이란 말이야. 나와 네가 같은 양을 가져야 한다는. 그리고 이런 평등은 내 생각에 모든 항들을 이분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남녀의 평등, 빈부의 평등… 이런 문제 정의 방식에 동의가 잘 안 되는 거야. 젠더는 남자·여자밖에 남지 않고, 시장에선 가진 자·없는 자로밖에 분류되지 않는. 난 그래서 우리가 ‘공정’보다는 어떤 실천과 말을 할 것인가에 있어서 ‘다양성’ 쪽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되어져 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니까. 다양성을 찾고, 다항多項을 만드는 일이 오히려 내가 하고 싶고 관심 있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이준석의 공정은 오히려 복고 역주행 같은 느낌이야. 다양성과 같은 이야기를 오히려 무마시키는 힘을 갖는. 

  지원 : 맞아. 덧붙여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 고은이 말처럼 공정을 이분화하는 특징이 ‘MZ 세대’를 움직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어. 명식은 공정과 관련한 역사적 맥락을 짚어주었고, 고은은 공정이라는 개념이 가진 맥락을 짚어준 것 같은데. 이렇게 우리는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정을 맥락에 비추어 생각하잖아. 근데 대부분의 ‘MZ 세대’에게 그것이 익숙한 사고방식일까? 하는 의문이 생겨. 인터넷에서 정보를 크롭crop하듯이 조각난 정보들을 가지고 세상을 판단하는 게 더 익숙하다면 공정은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것에 쉽게 남용될 수 있을 것 같아. 맥락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공정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야. 젠더불평등을 젠더 갈등으로 번역하고, 성차별을 역차별과 곧장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있는 위험. 

  우현 : 지원이형의 말이 와 닿는데. 나도 내 친구들도 정치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느끼고, 그러다보니 관심도 없는 것 같아. 그런데도 시사 이슈나 정치인들의 논란 발언들을 친구들은 카톡방이나 술자리에서 잘 가져와 농담 삼아 인용하더라고. 근데 가져오는 출처나 맥락들이 없어. 어디서 본 기사 제목이나, SNS를 떠도는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느낌에 따라 수용하는 거지. 정치뿐만이 아니야. 내 친구들은 향수를 좋아하는데, 향수 유튜버의 정보도 똑같이 공유해. 근데 공유하면서 꼭 끝에 ‘현타’온다며 욕을 엄청 하더라고. ‘코 끈이 길다’고. 코 끈이 길다는 건 마치 ‘가방끈이 길다’는 표현처럼 결국 애초에 있는 집안에서 지냈기 때문에 향수를 잘 안다는 거야. 박탈감을 엄청 느끼고 욕을 하는데, 조각난 정보들이 그 판단의 기준이지. 그런 식으로 유튜버를 욕하는 맥락, 정치인 발언을 욕하는 맥락이 똑같다고 느껴져. 이런 경향이 반대로 지금 홍준표의 2-30대 지지율이 높은 것과 연결된다고 생각해. 크롭된 그의 발언이나, 재치있는 장면들을 ‘밈’으로 소비하는 경향이 큰 것 같아. 진보·보수 상관없이, 소비하고 마는 거지. 이럴 때 공정은 적절한 가면 역할을 하는 것 같아. 공정이라는 가면 뒤에서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고자 하는. 맥락이 없으니 공정 자체가 각자의 공정으로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보면 정치인이 공정을 이야기하는 게 전략 같기도 해. 절대적 공정이라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니까.  





  BI-BIM-BAP is new Justice?


  명식 : 다양성을 이야기해서 말인데, 공정과 평등을 아까는 신자유주의와 양극화에 대한 반동으로 설명했는데,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전통적으로 공정과 평등, 이것과 함께 있는 것이 민주주의거든. 다른 말로 하자면 1인 1표 대의 선거제지. 남자도 여자도 노인도 젊은이도 모두 한 표씩, 우리 모두가 한 표를 던질 수 있는 추상적이고 동질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야.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다양성은 이러한 전제 위에서만 논의될 수 있어. 다양성 역시 추상적인, 한 표를 가진 신체로 이 시스템에 참가할 때 그게 공정한 형태로 다양성이 구현되는 사회인 거지. 그래서 아마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거야. “우리나라에 성소수자가 투표권이 없어? 아니잖아? 근데 왜 저래?” 어쩌면 퀴어 퍼레이드에 반대하고, ‘동성애 반대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어. 심지어 국회에선 비례대표도 뽑는다고 말하겠지.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이런 ‘정상적인’ 시스템 속에서 공정도, 다양성도 실현되어야 하는 거지. 

  지원 : 개별적인 다양성이나 정체성들을 추상화함으로써만 기능하는 다양성인 거지. 정의이론가 존 롤스가 이야기한 것처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지 않게 ‘베일 뒤에 가리고 생각해 보자’라고 하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의 성별 정체성이라든지 경제 사정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때 공평한 건 다 1표씩 가지는 거지. 그걸로 민주주의 사회가 정의의 원칙을 구축해 온 건데….

  명식 : 아까 지원이 언급한 아이리스 매리언 영 같은 사람들이 말하는 ‘차이의 정치와 정의’와 같은 맥락들은 사실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어. 이런 구도 속에서는.  

  지원 : 그럼 어떡해야 할까?

  고은 : 거대 양당의 힘 싸움이 문제인 것 같은데, 다당제로 가야 하나?

  명식 : 투표하는 건 똑같잖아!

  우현 : 음….


  공정과 관련한 길드다의 첫 번째 대담은 “그럼 어떡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마도 ‘공정’이라는 문제 틀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사안들을 다루기에 그리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는 결론으로부터 곧장 어떤 정치적 실천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준석은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샐러드 볼과 비빔밥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미국의 ‘멜팅팟melting pot’ 이론을 비판하며, 국민의 힘을 다양성을 융합 동화하는 당이 아니라, 다양성이 공존하는 당으로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며칠 뒤 라디오에 나와 그는 당론이 아니라며 차별 금지법을 반대했다. 그럼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렇게 옮겨갈 수밖에 없다. 비빔밥 그릇에 들어갈 수 있거나 들어갈 수 없는 나물은 누구지? 그들이 당론으로 허용(?)할 수 없는 성소수자, 장애인…. 이들에겐 어떻게 공정할 건데? 우현의 말처럼 그에게 공정은 그 자신의 이익을 숨기는 가면이 되고, 고은의 말대로 오히려 모든 문제가 대항하는 두 항으로 축소되는 것 같다. 그 외에 다양성들은 그릇에 들어갈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이렇게 보면, 길드다야말로 비빔밥을 추구하는 게 아닐까? 우리가 할 일은 나물을 선별하는 게 아니라 그릇을 넓히는 것 아닐까? 그건 비단 거대 정치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은 위 대담에서 내가 언급한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의롭다’는 외침은 정의 철학자들보다 먼저 있고, 이들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과 정치적 실천 속에 언제나 위치한다.” 길드다가 생각하는 공정, 그리고 우리의 “그럼 어떡해야 할까?”라는 질문은 그녀의 말을 지도 삼아, 더 탐구될 예정이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 글쓴이 김지원은 프리랜서로 가구를 만들고 공간 디자인을 하며 청년 인문스타트업 길드다에서 활동 중이다. 길드다에서 청년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문 교육 프로그램들을 기획/운영하였으며 길드다 멤버들과 함께 펴낸 책『다른 이십대의 탄생』의 공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