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볼펜 : uni style fit 0.28mm, juice up 0.4mm 리뷰

 김고은 (길드다)






  내겐 손편지를 쓰고 필사하는 취미가 있다. 어떤 사람은 손편지와 필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용만큼이나, 때로는 내용보다 더 그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개 사람들은 편지를 잘 버리지 못한다. 소중하게 잘 모아두는 사람이던 손에 집히는 책 사이에 끼워두는 사람이든 언젠가 다시 그 편지를 다시 볼 것을 기약한다. 필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멋진 문장을 그냥 흘러가게 둘 수 없어 붙잡아둔 것이므로, 생각 정리가 잘되지 않을 때 혹은 내 생각을 잘 표현해줄 멋진 문장을 찾고 싶을 때 다시 찾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손편지도 필사도 시간이 흐르고 다시 들춰보았을 때, 당시의 맥락을 조금 까먹더라도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정돈해서 쓰려고 노력한다.

  


  부분부분 색깔로 포인트를 주더라도 종이 면적의 대부분은 검은색 글씨가 차지한다. 그러므로 손으로 쓴 글을 정돈하는 가장 쉽고도 어려운 방법은 검은색 볼펜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검은색 볼펜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제품에 따라 필기감도 사용한 결과물도 다르다. 가령 국민템인 모나미 볼펜은 쫀득하고 뭉툭하고, 플러스 수성펜은 미끄럽고 묽다. 나는 필기감이 깔끔하고 결과물은 얇은 펜을 선호한다. 미음이나 리을은 네모반듯하게, 기억이나 니은은 뾰족하게 쓰기 때문에 글자 사이가 연결되기보단 끊기는 듯한 깔끔한 필기감이 적합하다. 또 글씨를 쓸 때 꾹꾹 힘을 주며 쓰기에 굵은 펜은 잘 쓰지 않는다.

  펜마다 같은 굵기라고 표현해 놓아도 실제로 써보면 굵기가 다 다르다. 내가 써본 펜 중 필기감이 깔끔하면서도 가장 얇았던 펜은 미쓰비시 연필에서 나온 ‘uni style fit 0.28mm’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썼으니 사용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이를 능가할 펜을 찾지 못했다. 이 펜은 똥이 절대 나오지 않고, 힘의 세기나 쓰는 방법과 상관없이 일정한 굵기로 써지며, 무엇보다 얇은 굵기로 세밀한 필기가 가능하다. 이 펜을 쓰면 유독 주변에서 좋은 반응을 받곤 하는데, 아마도 펜의 세밀한 표현능력과 나의 뾰족한 글꼴이 잘 어울리기 때문인 것 같다. 더불어 이 펜은 리필심을 따로 판매하므로 쓰레기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도 있다. 지금 쓰고 있는 펜의 몸통은 3년 정도 되었다. 

  


  얇은 펜을 기본으로 사용한다면 중간중간 입체감을 주기 위해 그보다 조금 더 굵은 펜이 필요하다. 굵은 펜은 단어를 강조한다거나, 책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적는다거나, 선을 긋거나 테두리를 그리는 데 사용된다. 만일 기본 펜보다 훨씬 굵다면 그 부분만 도드라져 발란스를 해칠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기본 펜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큰 효과는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지저분하게 보일 위험이 있다. 내가 이 용도로 사용하는 펜은 파이로트에서 나온 ‘juice up 0.4mm’다. 약 3~4년 전 일본 여행을 갔다가 대형 문구점에서 발견했는데, 처음 써봤을 때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펜은 내게 필기감이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 현재는 포인트 색인 빨간색, 파란색, 분홍색까지 이 펜을 사용하고 있다.



  필기에는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날이 더우면 손에 땀이 차 펜이 미끄러져 쓰기가 어렵고, 날이 추우면 손이 얼어 쓰기가 어렵다. 종이가 두꺼우면 너무 눌릴 수도 있고 너무 얇으면 종이 아래 상판의 우둘투둘함이 종이에 올라올 수 있다. 종이의 질감도 중요하고, 종이를 바치고 있는 상판의 재질, 쓰는 자세, 어깨와 손목의 상태도 변수다. 그러므로 갖은 변수에 맞춰 안정적으로 필기하기 위해선 나에게 맞는 펜을 잘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필기를 하면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필기는 장비빨이다. 좋은 펜 있으면 언제든 소개 바람!







길드다의 리뷰 코멘트!


└ 석운동(김지원) : 누가 필기를 이렇게까지......

└ 김왈리(송우현) : 항상 그 때 굴러다니는 펜으로 굴러다니는 이면지에 필기하던 저를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이걸 다시 읽어볼 미래의 저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일단 펜부터 사봐야겠네요.

└ 그냥명식(명식) : 저도 이제 모나미의 품을 떠나 새 펜짓을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안녕히, 153은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