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선생님을 그리워하며

 이희경 (길드다)






  1.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김종철 선생님 1주기란다. 작년 6월 어느 날 느닷없이 선생님의 부고를 접했다. 황망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배달된 『녹색평론』 173권. 선생님은 이미 가고 없는데 뒤늦게 도착한 선생님의 생생한 육성. 책을 펼쳤고 「코로나 시즌, 12개의 단상」이라는 글을 읽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한 ‘그’ 부분에 이르렀다. 


  "며칠 전부터 몸이 이상하다. 누워 있으면 좀 견딜 만하기는 해도 그리 편치는 않다. 왜 이럴까. 안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심란한 터에 몸이 이러니, 자연히 기분이 처진다. 소위 ‘코로나 블루’가 내게도 이런 식으로 오는가. 마흔에 접어들면서 갑상선 종양 진단을 받고 여러 달 후 수술을 받기까지, 나는 사람이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버릇에 빠져 지냈다. 모든 것을 책으로 해결하려는 ‘학필이’ 근성 때문에 불교 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하지만 별로였다....마음의 평정을 얻는 데에는 산책이 더 효험이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인가 건강이 좋지 않을 때마다 자연히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시간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자신의 죽음을 미리미리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이외에는 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몽테뉴의 에세이에는, 몽테뉴 자신도 ‘죽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고뇌한 흔적이 보인다.....(그러나)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에 대한 명상'이라고까지 했던 몽테뉴의 최종결론은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즉 '사람의 명은 하늘에 달려있다.(人命在天)'는 상식.... 내 생각에, 이보다 더 고매한 철학은 실제로 있을 수 없을 것 같다. 불안의 시대에 우리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데 이토록 명쾌한 '철학'보다 더 좋은 약이 있을까” (『녹색평론』 173권)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뭔가 사무치는 마음이 들었고 어깨까지 들썩거리면서 좀 길게 흐느꼈다. 







  2. 


  언제 처음으로 선생님을 알게 되었을까?  『녹색평론』은 익히 알고 있었고, 김종철 이름 석 자도 자주 접했지만 직접 뵌 것은 2011년 9월, 문탁 근처 느티나무도서관에서 열린 <포스트 후쿠시마> 강좌 때였다. 문탁에서 몇몇이 함께 갔었는데, 음, 그날 난 번개 맞았다. 

  우선 풍모. 선생님은 깡마른 몸매에 소박한 남방차림으로 나타나셔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두 시간 넘게 내내 서서 강의를 하셨다. 그리고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칠판에 수치를 쓰고 지도를 그려가면서, 또 쉽게 ( 『녹색평론』의 대부분의 글이 그러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설명하셨다. 그것만으로도 인상적이었지만 더 놀라왔던 것은 나를 포함한 수강생 대부분이 강의 내내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다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그 해 3월11일에 터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겪고, 체르노빌 사고(1986년) 이후에도 핵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사실을 통절히 반성하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그때부터 후쿠시마 사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몇 달 째 쉬지 않고 공부 중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이 영어도 되고 일본어도 되기 때문에 그쪽 자료는 다 읽을 수 있는데 막상 핵에 대한 연구가 가장 풍부한 독일권의 잡지나 신문은, 독일어를 몰라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무척 통탄스럽다고 하시면서 젊었을 때 독일어 공부를 해두지 않은 게 후회막급이라셨다. 그 끝에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을 향해 일갈하셨다. “공부해야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 너무 공부를 안 해. 그리고 반드시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해요. 외국어는 젊을 때 익혀야 해.”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기리면서 진정한 교육자는 너를 해방시키는 자이며 누군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이라고 말한 바 있다.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반시대적 고찰』) 그날 김종철 선생님이 그랬다. “예언자적 지성”과 “시인의 마음” (백낙청, 『녹색평론』 174권)이 나를 들어 올리셨다. 하마터면 나는 그날 독일어 학원에 등록할 뻔 했다.



  어쨌든 그날의 강렬한 경험은 선생님을 문탁으로 모시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012년 인문학 축제 (<데모스, 너의 정치를 발명하라>)때 강사로 모셔서 녹색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2015년 가을 강좌 <세월호와 메르스 이후, 삶의 길을 묻다> 때도 모셔서 2주 연속 ‘민주주의와 삶’에 대한 특강을 들었다. “인간이 전지전능한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려는 자세야말로 민주주의의 불가결한 성립 요건”이라고 말한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를 소개해주신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2015년 강의 때에는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우리가 “늙은” 당신에게 전화를 안 하고 문자를 했다고, 길 안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엄청 역정을 내셨던 것이다. 우리는 좀 당황했다. 까칠한 게 선생님의 매력이긴 했지만 그날은 유독 지치고 힘들어 보이셨다. 난 그날 상황에 대해 억지로 나 자신에게 납득시키느라 애썼다. “서울에서 용인까지 길이 얼마나 막히는데 버스타고 오시면서 힘드셨을 거야. 더구나 벌써 69세시잖아?”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 모든 것은 나이의 문제나 캐릭터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세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 어떤 것 하나도 제대로 되는 게 없던 현실에 대한 한탄과 실망, 그리고 짜증.


  “솔직히 선생은 이른바 ‘민주정부’ 아래서도 ‘무산된 기회들로 가득찬 풍경’이 반복되고 ‘소중한 기회가 너무도 어이없이 무산되어버리는’ 현실 (예, 새만금, 핵폐기장, 천성산, 골프장, 이라크 파병, 한미FTA, 4대강, 행정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케이블카, 원자력, 그린뉴딜, 적폐청사 부진...) 앞에서 거듭 좌절하고 절망했다. 

  선생은 ‘무지와 무관심이 결국은 이 사회의 온갖 불행과 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현실의 고통과 모순에 대한 전 사회적 관심과 통찰을 촉구하느라 끝까지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객관적 변화나 주체적 의식이 미진한 현실 앞에서 약 30년간의 노력이 ‘결국 헛일’처럼 느껴져 마지막 삶의 기력을 잃었는지 모른다” (강수돌, 「김종철 사상의 핵심-현실과 비현실의 변증법」, 『녹색평론』 179권)





  3.


  다시 1년 전. 당시 선생님은 이명(耳鳴)에 시달리고 계셨다. 인간의 탐욕이 결국은 21세기 역병을 가져왔고 속절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이 괴로우셨을 것이다. 하지만 뭘 할 수 있었을까? 후쿠시마 때도 그러했듯이 읽고 또 읽고, 쓰고 또 쓰는 수밖에. 그 사이 계속 앓았고 틈틈이 산책을 하셨겠지. 그러던 어느 날의 실족. 하지만 그것은 총체적인 과로사. 마치 루쉰이 그러했듯이 김종철이라는 사상가 역시 시대와 불화하고, 섣부른 희망을 믿지 않았지만, 절망도 허망하다고 생각하여, 매일 매일 한 땀 한 땀 글을 쓰고 잡지를 만들고 시대의 고름을 짜고 또 짜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루쉰이 그러했듯이 그 세월은 속절없이 선생님의 육체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난 그때 생각했다. 어쩌면 과로사가 이런 시대에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아닐까, 라는. 

  그리고 1년. 과문한 탓인지 내 귀엔 더 이상 아감벤과 지젝 사이에 벌어졌던 마스크 논쟁과 같은 이슈는 들려오지 않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아니 생각했던 방역의 통치 합리성에 대한 분석도 시도되지 않는다. 아, 뉴 노멀은 어디로 갔지? 백신이 해결책이 아니라 삶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니 소박한 삶을 껴안으면서 타자와 공생하라는 선생님의 호소는 지금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문제해결의 관건은 백신이나 치료제가 아니라 면역력의 증강에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면역력 증강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노력, 즉 오염되지 않은 맑은 대기와 물을 확보하고, 건강한 먹을거리의 토대인 농토와 자급 지향의 생태적 농사를 보호, 장려해야 하고, 동시에 유전자 조작식품, 스마트농업, 식물공장 따위 근원적으로 반자연적인 온갖 형태의 상업, 산업농을 철저히 배격하는 일에 우리의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다른 생명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인간의 경우, 면역력은 정신적인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 앞에서 지나치게 겁을 먹고 있는 것은 실은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매우 드문 탓인지도 모른다. 산업문명은 많은 사람들에게 외형상의 물질적 풍요는 가져다주었는지 모르지만, 그 풍요는 기실 질적으로 매우 열악하고 불건강한 것임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의 첫째 조건은 타자들-사람을 포함한 뭇 중생들-과의 평화로운 공생의 삶이다. 그리고 공생을 위한 필수적인 덕목은 단순 소박한 형태의 삶을 적극 껴안으려는 의지(혹은 급진적 욕망)이다. 내 목소리부터 낮춰야 새들의 노래도, 벌레들의 소리도 들린다. 그래야만 풀들의 웃음과 울음도 들리고, 세상이 진실로 풍요로워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바이러스는, 공생의 윤리를 부정하는, 그리하여 우리 모두의 면역력을 끊임없이 갉아먹는 ‘탐욕’이라는 바이러스다” (『녹색평론』 172권) 


   대신 백신이 유례없이 빠르게 개발되었고 곧 코로나가 종식된다는 설레발이 요란스러웠고 다시 ‘델타변이’가 급습했고, 백신접종 예약사이트는 마비가 되었고, 머리가 하얗게 센 정은경 본부장은 또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난, 과로사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난, 이 정세에 부화뇌동하여 며칠 전 어머니에게 백신을 맞혀드렸고 나도 예약을 했다. 무엇이 불안한 것이었을까? 코로나 확진? 그렇다면 그건 또 무엇이 두려운 것일까? 아픈 것? 죽는 것? 일을 못하게 되는 것? 지금은 초기와 다르게 확진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거의 없는데 왜 나는 점점 위축되고 있는 것일까?  


  문탁의 친구들에게 제안 한 가지를 해야겠다. 코로나 지난 1년을 평가하자고. 우리는 왜 백신을 맞는지.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소위 ‘집단면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코로나와 공생하겠다는 영국이나 싱가포르는 또 어떤 사태인지. 우리는 왜 이렇게 고분고분한지. 지금 이 시국, 어떤 것이 가장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태도인지. 차분하고 격의 없고 성찰적인 이런 토론회만큼 김종철 선생님을 추모하는 더 좋은 방법은 없지 않을까? 너무 더워서 숨도 못 쉬겠는 이 여름, 델타변이가 무서워 두꺼운 K94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헉헉거리면서 김종철 선생님을 다시 그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