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여행기 :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김지원 (길드다)
‘짓기와 거주하기 온라인 세미나’의 두 번째 시즌, 우리는 ‘도시’에 대해 공부했다. 텍스트는 도시계획가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도시계획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 이 책은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보도와 근린공원의 효용에서 시작해 도시의 블록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적절한지, 도시 슬럼화는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올바른 도시가 만들어지기 위한 정책과 제도는 무엇이 있는지 등 도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제안들을 담고 있다. 물론 그녀는 결코 평범한 도시계획가는 아니다.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르코르뷔지에1)의 아파트에 반대하고, 현대 도시계획가들이 만들어내는 차이 없는 거리의 구획과 무분별한 공원의 조성, 그리고 충분한 검토와 원주민에 대한 배려가 없는 당시의 재개발을 매우 비판적인 시선에서 바라본다.
“근데 이게 21세기 서울에도 적용할 수 있는 거야?” 도시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히 생각해 볼 이유가 없었던 네 사람이 모여 도시 계획가의 책을 읽고 있자니―그것도 70년 전, 지구 반대편 미국의 도시에 대한―분석적인 텍스트에 비해 우리의 대화는 매우 주관적이었고, 세미나는 종종 대혼란이었다. 서울에서 임대료 상승으로 도시를 탈출한 영빈은 가족의 이사 경험을 이야기했고, 미술학도였던 다훈은 제이콥스에 반해 르코르뷔지에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번도 도시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자칭 ‘밀양 촌놈’ 어진은 도시에 대한 경멸과 경탄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고, 난 세미나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와 제이콥스의 논의들을 연결해보고자 진땀을 흘렸다.
세미나가 끝나갈 즈음, 나는 우리가 도시를 직접 경험하며 이 세미나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떨까 제안했다. 각자의 기억 속 도시와 제이콥스가 분석하는 도시 사이의 괴리를 도시에 대한 동일한 경험을 통해 좁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기억 속 도시들이 아니라, 현재의 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어디가 좋을까?’ 나는 곧 을지로-청계천을 떠올렸다. 을지로는 제이콥스가 본인의 논의를 한정한 ‘대도시’에 적합할뿐더러, 아주 독특한 경제·문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이 지역은 강제적인 재개발이 진행 중이고, 여전히 반대와 찬성의 격렬한 부딪힘이 생생한 곳이다. 을지로를 걸어보자는 제안에 세미나 구성원들은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밀양에 사는 어진도 당일 아침 고속버스를 타고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왔다.
위에서 내려다 본 을지로
종묘에서 모인 우리 네 사람의 첫 번째 목적지는 세운상가였다. 을지로 청계천 재개발 구역은 통상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불리며, 그 중심에 세운상가가 있다.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서면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진 종로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종묘 쪽을 바라보며 탁 트인 광경에 놀라 다들 한마디씩 한다. “서울에 이렇게 멀리까지 훤히 보이는 곳이 있었어?” 그리고 반대편으로 돌아서니 왼편으로는 오밀조밀 빽빽하게 들어선 낮은 판잣집들(세운4구역)이, 오른편으로는 재개발이 진행 중인 모습(세운3구역)이 보인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벼락치기로 훑어본 몇 가지 논문과 문서들의 내용을 세미나 친구들에게 요약해 주었다. 나도 처음 알게 된 이야기들이 많았다.
현재 세운상가가 자리한 일대는 일제강점기 미국의 공습에 대비해 남겨 놓은 공터였는데,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 일대가 무허가 판잣집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전쟁에 갈 곳 잃은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 잡았고, 먹고살기 위해 미군부대서 흘러나온 군수물품과 공구 장비를 다루는 노점상들이 청계천 변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곧(60년대 초) 청계천 복개공사로 시작된 박정희 정권의 대대적인 도시 재개발에 의해 천변의 상인들은 판잣집과 남아있던 한옥들 사이로 들어오게 되었다.2) 세운상가 터에는 주로 미군을 대상으로 했던 성매매 업소가 즐비했는데, 도시 정비의 명목으로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인 세운상가가 기획되었다. 완공 후 한편으로 70년대까지 전자제품의 메카로 불리던 세운상가는 강남과 용산이 개발되며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공구상가를 비롯한 일대 제조업 시장은 다양한 업종―목공, 금속, 유리, 아크릴, 인쇄 등―이 오밀조밀 들어서며 좁은 골목을 따라 네트워크를 키워갔다. 오늘날 이 지역은 ‘소규모 다품종을 빠르고 저렴하게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재료 가공부터 제품을 완성하는 모든 단계를 한 장소에서 해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업종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곳이 처음인 사람이 자신에게 필요한 상품을 만드는 공정의 어느 곳에서 시작하더라도 시냅스처럼 형성된 업체 간 네트워크 덕에 소개를 통해서 어떤 것이든 빠르게 만들 수 있다.3) 이 네트워크는 오늘도 예술대학의 학생들과, 신규 제조업, 젊은 창업자들과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운상가 옥상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는 세운재정비 이후의 조감도를 볼 수 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다시 조감도 앞에 모인 친구들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 본격적으로 세워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계획은 2014년 박원순 시장 때 무산되었다. 세입자들과 주민들의 반대에 그는 ‘도시재생’이란 이름으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의 접근은 분명 재개발이 아니라, ‘다시, 세운’ 이라는 이름의 ‘도시재생’이었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이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만들어진 초고층 주상복합 조감도에는 이 네트워크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없다. 실제로 이 사업은 50여 년 전 세운상가가 건축될 당시와 마찬가지로 사업이 진행되기 시작하면서 서울시는 한발 물러섰고, 시행사의 고압적이고 강제적인 태도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제대로 된 합의 과정 없이, 쫓겨난 주민, 상인들에 대한 보상이나 60여 년간 만들어진 네트워크에 대한 대책 없이 3구역 한 블록이 통째로 전면 철거된 것이다. “이게 재생이라고?” 그들은 이곳 을지로에 형성된 네트워크, 어디에도 있을 수 없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 구체적인 관계의 망을 머리 위에서,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안에서 들여다 본 을지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우리는 아직 철거가 진행되지 않은 세운 4구역의 골목 사이사이를 걸었다. 주말이라 대부분 업체들이 문을 닫았지만, 잔업이나 청소를 하는 몇몇 열린 공장들도 있었다. 어떤 공장에서는 이곳에서 숙식도 해결하는지, 주인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물을 떠다 놓고 ‘난닝구’ 바람에 수건을 목에 걸고 세수와 양치를 하며 우리를 흘깃 쳐다봤다. 세운상가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네트워크가 어쨌네, 역사가 어쨌네 하며 급조한 정보를 가지고 한껏 떠들고 내려와서인지 이곳에 있는 구체적인 삶들을 구경거리 삼는 기분이 들어 어쩐지 맘이 불편해졌다. 다들 비슷한 기분이었는지 말없이 구석구석 골목을 살폈다.
좁은 골목은 꼬불꼬불했고, 건물 사이사이, 건물을 통과하면서도 골목이 이어져있었다. 길이 아닌 것 같은 곳으로 들어서도 다시 골목으로 나올 수 있었다. 1시간여를 처음 걷는 골목과 건물 내·외부를 돌아다니면서도 막다른 골목을 만난 건 단 한 번뿐이었다. 제조업 간의 네트워크를 물리적인 길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한 건축가의 표현처럼 이 구역의 길들은 실핏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건축들은 오래전에 지어진 한옥과 판잣집들을 침범하고 개조하면서 만들어졌으면서도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길의 형태를 유지하고 보완했다고 한다.4) 콘크리트와 철근 기둥들 사이로 한옥의 보나 기둥이 슬쩍 고개를 든다. 길들은 말 그대로 모세혈관이 정·동맥의 미세 순환을 돕듯이 자전거나 개조된 리어카에 실린 재화의 순환을 돕고 있었다. 4구역의 실핏줄을 돌아다니던 중 낮은 건물들 사이로 3구역 철거를 위해 세워진 높은 크레인의 머리가 자주 보였다. 저 풍경을 보며 상인들은 어떤 기분, 무슨 생각을 할까. 60여 년을 자리를 지키며 만들어낸 고유한 삶의 형태, 관계, 그리고 그러한 관계를 표현하는 독특한 도시의 풍경이 통째로 없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더 깨끗해지는 것, 더 높아지는 것, 더 세련되어지는 것이 이런 독특한 삶의 모습들을 통째로 사라지게 할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우린 곧 이전을 하게 될 을지면옥으로 가 이른 저녁을 먹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가 지정되고 사람들이 이 사안에 관심을 갖게 한 뉴스는 을지면옥이 사라진다는 소식이었다. 사람들의 분노에 박원순 당시 시장은 을지면옥의 원형을 보존하겠다며 양미옥 등 유명한 노포 몇 군데를 생활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1년간의 협의 과정에서 을지면옥은 “주변 상가는 재개발되고 우리만 혼자 그대로 남는 방안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단다. 짜졌다, 예전 같지 않다며 냉면 맛이 바뀌었다는 냉면 전문가들의 평가도 많지만 난 왠지 맛있기만 했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들 안의 공장들과 같은 모양으로 건물을 통과하는 을지면옥의 입구가 이 도시의 관계가 어떤 모양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생명은 무질서한 것
각자 준비한 마지막 세미나를 위한 메모와 을지로 여행의 소감을 나누기 위해 우리는 을지면옥에서 한 블록 건너 ‘힙’하다는 을지로 노가리 골목으로 향했다. 해가 떨어질 즈음이 되면 한산해지는 을지로의 다른 거리들과 달리 이곳은 한적한 골목에서 코너를 도는 순간 “와” 소리가 날 정도의 별천지가 펼쳐진다. 골목을 밝히는 밝은 조명, 빨갛고 파란 노상용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 노가리 굽는 냄새와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 도대체 어디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골목을 한가득 채우고 있다. 코로나로 좀 한산할 거라 기대했던 우리는 두 배로 놀랐다. 사람들의 양 때문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7호점까지 자리한 ‘만선호프’였다.
20대 초반에 내가 이곳에 왔을 때 이곳은 OB베어, 뮌헨호프 등을 포함해 다양한 호프집들이 있었고, 만선호프는 한개 지점 밖에 없었다. 광란의 맥주파티와 만선호프 7호점의 골목 풍경은 어떤 점에서 바로 옆에서 이루어지는 재개발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얼마 전 이 골목에 1980년 처음으로 호프집을 만든 OB베어가 자리한 건물주 측이 100여 명의 용역을 동원해 강제퇴거를 시도했다가 인근 상인들과 충돌하며 실패했다는 소식을 보았는데, 건물주가 실은 만선호프와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이 비교적 적은 호프집으로 들어가며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제이콥스의 문장을 떠올리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에는 얽히고설키게 뒤섞인 채 상호 지원하는 온갖 종류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이 골목이 온통 만선호프로 채워진다면, 과연 여전히 그것을 노가리 골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세운 3구역, 4구역에서 6구역까지 조감도와 같은 고층 주상복합이 들어선다면, 그것을 과연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다훈은 을지로의 경험과 텍스트를 통해 제이콥스를 만나며 바뀐 생각을 말했다. “때론 무언가를 좋다고 느끼게 만든 그 지점과, 거슬리게 만든 지점이 동일한 때가 있다. 내가 르코르뷔지에의 디자인을 멋지다고 느낀 이유는 이 책에서 비판한 ‘획일성’때문이었다. (그의 도시계획은 고도로 정돈되어 있다.) 책을 읽으며 그녀의 비판에 여지없이 동의한 부분이 내가 르코르뷔지에를 좋아한 이유였다. 완독한 지금도 여전히 르코르뷔지에의 건물이 시각적으로 매력적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좋은 건물인가에 관해선 다양한 의문이 생긴다.(다훈의 메모 중)” 다훈은 자신이 그동안 학습한 미감에 질문을 던져봐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제이콥스 역시 질서 있고 정돈된 것들에 질문을 던질 필요를 제기한다. 그녀는 무분별한 개발을 비판하며 도시의 생산성과 창의성은 획일성이 아닌 조밀도와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조밀도와 다양성에서 생명이 생긴다면, 생명은 무질서한 것이다.”
물론 우리가 그녀의 텍스트를 정답처럼 여길 이유는 없다. 영빈은 을지로 여행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며 내가 세운상가에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이콥스가 당시 비판한 고층건물이 12층 높이 정도의 건물이었다는 게 흥미로워요. 고작 세운상가정도 높이인데, 지금 우리가 보는 고층 건물은 엄청 높잖아요.” 뿐만 아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도시는 당시보다 훨씬 발달된 기술과 다변화된 욕망의 배치들 속에 있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에서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도시문제를 논하고 있지만, 도시가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도시 외적인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투쟁을 했던 어진은 제이콥스의 그 좋은 논의들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내리는 결론 일부―“전원 환경이나 촌사람들에게서 도시의 병폐를 줄일 묘약을 찾는 것은 낭만적일지는 몰라도 시간 낭비일 뿐이다”―에 선뜻 동의가 가지 않는다며 메모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었다. “현재의 대도시는 환경 연쇄의 명백한 가해자이면서 자연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도 악독한 적이다. 도시민들은 어느 자연이건 바다건 산이건 색다른 유흥의 장소로 사용한다. 그런데 그뿐일까. 대도시는 생존을 위해 전기, 콘크리트, 철, 목재, 쌀, 채소까지 모두 아낌없이 빨아먹는다. 도시가 아닌 곳의 거의 모든 생산들이 결국 도시로 가기 위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유통 과정에서 밀양 송전탑과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제인 제이콥스는 대도시를 인류가 지구에 살면서 생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런 식이라면 에너지를 폭식하며 비대하게 성장한 대도시의 쇠락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르겠다.(어진의 메모 중)”
한편으로 어진의 지적도 타당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나는 그녀가 농촌에 대한 도시의 착취를 모른 체하려고 했다기보다, 도시와 함께 삶의 형태를 일구어가는 사람들의 삶은 무시한 채 낭만적인 조감도를 그리는 이들을 비판코자 했다고 해석한다. 70년의 시차와 지구 반대편 서울 을지로, 그보다 조금 더 먼 밀양에는 그 나름의 조밀도와 다양성들이 필요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제인 제이콥스를 읽게 된 것은 전 시즌에 읽은 리처드 세넷의 『짓기와 거주하기』에 그녀가 언급되었기 때문이었다. 세넷은 책에서 올바른 도시의 상은 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차원과 추상적이고 이상적인 이미지의 차원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제이콥스와의 말다툼, 다소 퉁명스러운 그녀의 질문을 인용하며 이를 책의 핵심 질문으로 꼽는다.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겁니까?” 제이콥스에게서 시작된 이 질문이 세넷을 거쳐 을지로를 여행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여기서 성급히 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질문은 짓기와 거주하기 세미나의 세 번째 시즌에서 이어질 것이다.
각주 :
1) ‘인간을 위한 건축’으로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는 혁신적이면서 합리적인 건축설계와 시대를 앞서나가는 이론으로 건축사에 큰 족적을 남긴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통한다.
2) 송도영, ‘청계천 공구상가의 형성과 일상적 관계망’, 「청계천 : 20세기 서울변천사 연구, 1 : 시간, 장소, 사람」, 2001
3) 정민지, ‘보존과 재생, 그리고 재개발’, 「외대교지」, 2019
4) 조정구, ‘장사 기계공구 상가, 도시의 미로’, 『서울진풍경』,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