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 디스 What's Diss?

 송우현 (길드다)



  * 본문에 사용된 용어들 중 디스Diss’Disrespect에서 유래한 것으로 힙합 장르에서 랩을 통해 특정 대상을 비난 혹은 비판하는 행위를 말한다. ‘디스전은 디스와 전의 합성어이다. 한편 그루브Groove’는 대중음악에서 충동적인 리듬이 주는 느낌 또는 스윙의 감각을 말한다. 이상 위키 백과 출처.




  


  지난 125, <외톨이>, <Speed racer> 등 일명 속사포랩으로 히트곡을 남겼던 래퍼 '아웃사이더'가 유투브 컨텐츠 딩고 킬링벌스에 등장해 자신의 히트곡들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 영상을 본 래퍼 가오가이는 이런 반응을 남겼다. "이야 이런 xx도 킬링벌스에 나오네 참 해괴망측한 세상이다." 가오가이는 쇼미더머니9’에 출연하여 쌈마이(?)한 캐릭터로 이름을 알린 래퍼다. 가오가이의 거침없는 발언은 큰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는 이후에도 SNS에서 "그루브가 없고 빠르기만 한 랩은 힙합이라고 할 수 없다며 아웃사이더를 향한 디스를 멈추지 않았고 이틀 뒤엔 적나라한 디스곡까지 발표하며 본격적인 전쟁을 선포했다. 나는 가오가이의 디스를 통해 빠른 랩은 정말 그루브가 없는가? 혹은 그루브가 없으면 힙합이 아닌가?’ 등등 힙합에 대한 새로운 질문들을 읽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며 그의 곡을 들었다.

 

  선배? 한게 뭔데?

  아ㄹㄹㄹㄹㄹ 해서 번돈?

  그래서 니 옆에 누가 있어? 결국 외톨이 된 거?

  ...

  인성이 좋아야지 힙합하지

  래퍼들은 벌기 위해 이빨까지

  난 뒤져도 할 말하고 x창 나지


- 가오가이, <x>


  하지만 가오가이의 랩은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래퍼들에게 과격한 이미지를 요구하면서 인성에 대해서 논하는 대중들, 미디어에 한 번 노출되면 눈치 보며 좋은 말만 해야 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었다. 마치 래퍼가 할 말이 있으면 랩으로 하라는 댓글에 대한 답처럼 느껴졌다. 비록 내가 처음 예상했던 내용과는 좀 다르긴 해도 기술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훌륭한 랩이었지만 일반적으로 디스전이 갖고 있는 맥락과 대중들의 니즈에는 맞지 않았던 탓에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웃사이더의 맞디스곡이 공개됐다.(아웃사이더는 수많은 디스들을 받아왔지만 그간 한 번도 맞디스곡을 공개한 적이 없었다.) 아웃사이더의 곡은 가오가이의 얕은 커리어와 노이즈 마케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기존 팬들이 기대하는 디스전의 내용과 맥락을 이루고 있어서인지 반응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아웃사이더 특유의 그루브 없이 빠르기만 한 랩들은 여전했다. 이에 온라인상에는 디스전은 맥락이나 사실관계보다는 디스곡의 퀄리티, 랩의 퍼포먼스로 승패를 가려야한다는 의견들이 등장하였다. 각 곡의 댓글 창엔 수많은 의견이 쏟아졌고, 마치 네티즌들이 정하는 승패결과에 따라 패자는 힙합씬을 은퇴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이 디스전의 승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래퍼들의 디스전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 가오가이와 아웃사이더





디스전의 계보


  보통 디스전이라고 하면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서의 디스 배틀을 상상할 것이다. 11로 상대방을 정하고, 상대를 향한 랩 퍼포먼스와 함께 상대방을 누가 더 잘 약 올렸는지를 평가하는 것. 관객들은 약간의 허구와 과장 속에서 오가는 험한 말, 혹은 상대를 약 올리기 위해 동원되는 위트와 기술을 즐긴다. 이는 둘의 감정적인 싸움이라기보다는 마치 프로레슬링 경기처럼, 하나의 로 인식된다.

  하지만 시대와 환경에 따라 디스전의 형태는 달라져 왔다. 디스전의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흑인 문화권에 있는 ‘the Dozen’이라는 게임과 힙합문화가 결합하면서 생겨났다고 주로 이야기된다. 이 게임은 한 명이 상대방을 디스하고, 디스를 들은 상대방은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아야 이기는 게임 - 한때 한국 예능에서 유행했던 당연하지게임과 유사하다 -이다.

  다만 맨 처음의 디스전은 관객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가 아니라 진지한 두 래퍼의 언쟁이었다. 힙합이 갖고 있던 폭력성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룹 ‘Zulu-nation’은 이렇게 얘기한다.

 

아무리 뜻이 맞아 함께 활동하는 동료나 형제라고 해도, 언젠가 마찰이 생기고 싸우는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총이나 무기, 주먹대신, 언어를 선택한 겁니다. () 랩으로 서로를 공격하고 상대방을 때려눕힐 때까지 일종의 언어적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 Zulu-nation, 다큐멘터리 <Beat This!: A Hip-Hop History> 中

 

  그들은 서로에게 쌓여있던 감정을 쏟아내고, 엇갈려왔던 의견에 대해 진지하게 논쟁했다. 이처럼 디스전 문화는 빈민가의 흑인들이 갱스터들의 폭력적인 면모을 버리도록 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고, 힙합문화를 비폭력적인 문화로 만들어가는 데에 많은 기여를 했다. 갱스터나 범죄와 가까울 수밖에 없던 흑인들에게 디스전은 서로간의 마찰을 평화적으로, 예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리고 힙합의 황금기였던 90년대부터 00년대에는, 일종의 배틀 문화가 형성되었다. 소위 프리스타일 배틀이라고 하는 즉흥적인 랩으로 디스전을 벌이는 문화가 정착한 것이다. 이는 즉석에서 곡의 라임을 만들어내면서도 그 안에 상대방을 디스하는 내용을 담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리는 방식이다. 빈민가의 래퍼들에게 디스 배틀은 공장, 골목길 등을 무대로 한 게임이자, 자신의 끼를 선보이는 장이었다영화 <8마일>에서도 볼 수 있듯이 주기적인 랩 배틀 파티가 열리고, 랩 좀 한다는 친구들끼리 모여 다른 동네로 도장 깨기를 떠나는 등 젊은 층들에게 디스 배틀은 큰 인기를 얻었다


  

▲유명 래퍼 '에미넴'의 전기영화인 <8마일> 중 디스 배틀 장면


  특히 젊은 층들의 디스 배틀에 있어 일종의 동료 그룹인 힙합 크루Crew는 큰 역할을 했다. 크루로 친구들과 뭉쳐 다니며 빈민가에 으레 존재하기 마련인 범죄의 위협을 피할 수도 있었고, 크루의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시너지를 내며 하나로 뭉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힙합과 디스 배틀은 범죄나 가난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들이 안전하면서도 예술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공동체의 기반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미디어가 발전한 후로 디스 배틀 - 디스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제는 오프라인에서 상대방을 마주 보며 랩을 뱉는 게 아니라 디스곡을 온라인에 공개하게 되었다. 공개 전에 곡을 녹음하고 정제한다는 점에서 프리스타일 배틀이 갖고 있던 즉흥성은 사라졌고, 곡의 내용과 랩의 퀄리티, 상대방을 디스하는 명분 등이 중요해졌다. 명확한 룰이나 문화가 생겨나진 않았지만 불특정 다수의 관객들이 승패를 토론하며, 아예 디스전을 활용한 쇼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는 등 디스전은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디스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이러한 디스전의 변화가 퇴보적이라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달라진 환경을 활용하여 힙합문화와 디스전이 더 건강하고 의미는 방향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지금의 디스전은 다른 무엇보다 매우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행해진다. 특히 오늘날 네티즌들은 무려 10년 전의 디스전의 승자를 놓고 논쟁을 벌일 정도로 디스전에 있어 승패에 집착하는데, 그들이 승패를 판단하는 관점은 주로 두 가지이다. ‘누가 더 윤리/도덕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하였는가, ‘누가 기술적으로 랩을 더 잘했는가’. 전자는 디스전을 벌이는 래퍼, 즉 메신저를 둘러싼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 가오가이가 급발진이라며 지탄받는 이유도, 그가 아웃사이더를 디스한 맥락이 빠른 랩은 힙합이 아니라는 그의 개인적 지론이었기 때문이고, 랩 가사를 보아도 그의 입장을 그 이상 정당화할 내용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명 래퍼인 스윙스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디스전은 윤리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가를 따지는 게 아니다. 그럴 거면 법정 가서 싸우지. 힙합에서 디스전은 언어권투인 것이고, 누가 더 창의적으로 상대방을 약 올리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 스윙스, 딩고와의 인터뷰

 

  이런 경우가 후자의 경우이다. 디스는 어차피 각자의 주관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 객관적 진실을 파악할 수는 없다. 디스전은 거는 입장에서도, 받는 입장에서도, 누가 더 랩을 잘하는가를 겨루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과거 프리스타일 배틀때와 비슷하게, 랩의 메시지에 천착하는 대신 랩 자체의 퀄리티를 평가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과거처럼 즉석에서 랩을 뱉지는 않지만 말이다.



▲딩고와의 인터뷰에 나온 스윙스. 
현 시점에서 딩고는 한국 힙합에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회사 중 하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문제는 또 발생한다. 랩 퀄리티의 퀄리티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과연 대중성과 인기를 벗어난 순수한 실력이라는 게 있는가? 과거 길거리나 클럽, 창고 등에서 벌어진 프리스타일 배틀 또한 현장 관객의 함성의 크기나 한쪽이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승패를 결정했다. 그 함성에도 현장의 분위기, 같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몸짓, 눈빛 등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객관적인랩 퀄리티로 승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이유들로 인해 나는 불특정 다수가 관객으로 존재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디스전의 승패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생각한다. 나는 그 대신 디스전이 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쟁할 수 있는 공론장의 기능을 하길 바란다. 수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온라인의 특성을 활용하고, 래퍼들은 한 가지 주제를 던짐과 동시에 한 의견의 대표자가 된다. 명확한 논리만이 중요한 건 아닐 것이다.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랩을 엄청나게 잘한다면 의견에 설득력이 더해질 것이고, 반대로 논리가 아무리 탄탄해도 랩을 못 한다면 설득력이 없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가오가이와 아웃사이더의 디스전으로 예를 들자면, 가오가이가 빠른 랩에 관한 의견을 던지고, 이에 대해 많은 래퍼들과 네티즌들이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빠른 랩은 정말 그루브가 없는가?’ ‘그루브가 없으면 힙합이 아닌가?’ 등등... 하지만 이번 디스전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오지 못했다. 랩과 힙합에 관한 래퍼들의 의견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걸 즐기는 팬들에게도 하나의 기준선을 제시해준다면 더 좋은 방식으로 디스전이 진행되지 않을까? 내가 열어보라고? 나 같은 건 유명 래퍼를 디스하면 악플만 수십 개가 달리니, 영향력 있는 유명래퍼가 좀 해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