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청춘이다

 김고은 (길드다)






  길드다는 매년 워크샵으로 한 해를 시작해왔다. 올해는 나의 건강상태 때문에 시작이 늦어졌다. <아젠다>의 필사 코너가 2달간 실리지 않은 것도, 작년 말에 열린 <2020 비학술적 학술제>의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도 내가 아팠기 때문이다.

  28살에 앓아누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오히려 나는 문탁 네트워크의 선생님들이 연세가 올라가고 질환을 하나둘씩 얻게 되시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보필하면 좋을지 상상해왔다. ‘나중에 시골로 내려가신다던데, 정기적으로 찾아가 힘쓰는 일을 한 번씩 하고 올까? 지력과 체력 감퇴로 슬퍼하시는데, 더 심해지더라도 장로나 장인으로 모실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현실에선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선생님들이 내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게 괜찮을지, 한약을 먹는 게 좋을지, 길드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계신다.

 

 



코로나와 a형 간염


  11, 몇 년 전 떠난 친구의 추모원에 다녀온 날 밤 어지럽고 등 뒤가 저릿저릿했다. 장거리 운전 탓에 목 디스크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아무리 아파도 고열로 고생한 적이 없었으므로 저릿저릿한 느낌이 오한이라는 걸 몰랐다. 삼 일간 잠만 잤는데도 고열이 떨어지지 않자 큰 병원을 찾았다. 두 시간을 기다려 만난 의사는 이 상태로 병원에 오면 어떡해요!”라며 다그쳤다. 의사의 불호령과 동시에 간호사들은 내가 닿은 모든 곳을 소독하기 시작했다. 잠재적 코로나 환자인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집과 선별진료소뿐이었다. 병원 전문가들은 권위를 가지고 몸의 상태를 진단 내리지만, 코로나 시국엔 때때로 그 역할을 거부하기도 한다.

  혹시 몰라 아빠는 휴가를 냈고, 나는 몸이 좋지 않은 엄마나 며칠 뒤 쿠바로 유학을 가야 하는 친구 G에게 병을 옮기진 않았을지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다음날 도착한 판별문자는 내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리고도 몸이 회복되지 않아 일주일 뒤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는 이번에도 화를 냈다. “이 상태인데 왜 병원에 오지 않았어요!” 가지 않은 게 아니라 갈 수 없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았다. 먹지 않으니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렇게 아프기 시작한 지 열흘 만에 병명을 찾았다. a형 급성간염이었다. 치료와 함께 회복되는 내 병세를 보자 이번엔 의사가 내가 맞고 있는 의약품들의 이름과 성능을 즐겁게 설명하더니 이윽고 사과를 전했다. “그때 돌려보내서 미안해요. 진단을 빨리 못 했네. 병원에 확진자가 셋이나 와서 문 받을 뻔했거든.” 최근 2030에게서 많이 발병한다는 a형 간염은 간 수치가 정상범위의 몇백 배까지 증가하므로 초기에 입원해서 최대한 간 수치를 내려야 한다. 그러나 내가 치료를 받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회복기에 든 후였다.


  

▲ A형 간염은 독감과 증상이 거의 유사하지만 치료제가 없다




뭐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상태


  정신 차리고 보니 1월이 다 가 있었고, 2월이 되어서도 괜찮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 뭔가 이상했다. 그간 나는 몸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속적인 생활습관을 통해 잘 관리해 왔다(고 생각했다). 17살 때부터 해온 홈트레이닝과 각종 운동으로 섬세하게 근육을 쓸 줄 알았다. 길드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남자애들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평소 커피··담배, 패스트푸드와는 거리를 뒀으며, 병원에 가지 않고도 자가진단과 자가치료를 할 수 있었다. 몸에 한기가 있으니 찬 음식은 피했고, 내게 잘 맞는 운동 루틴을 가지고 있었다.


 

▲ 길드다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때의 나


   그러나 간염에 걸리고 나는 내 방식에 대한 확신을 잃었다. 고열이 막 시작되었을 때 옷을 가지러 가다 세 번 혼절했으나 끝까지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그간 도움을 청하고 의존하는 일에 미숙했지만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몸을 그렇게 관리했듯, 뭐든 스스로 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픈 기간이 길어지자 뭐든 혼자서 해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조금은 낯간지럽고 조금은 미안했지만, 어느 때보다 더 다른 이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음식을 신경 써주느냐 써주지 않느냐에 따라 상태가 호전되기도 하고 악화되기도 했다. 동생이 휴지와 물을 가져다주느냐 가져다주지 않느냐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달라졌다. 아빠가 사다 준 과일과 내 옆에만 붙어 있던 강아지 또롱이는 한 달간 내 유일한 낙이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내 일을 덜어주고, 함께 걸음을 늦춰준다. 아플 때 이렇게 많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건 큰 복이다. 이 복은 아마 줄곧 내 옆에 있었지만, 그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일 터이다.

   스스로 케어하는 것이 내 능력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을 줄 모르는 것은 내 무능력이었을지도 모른다. 선물을 주는 건 좋아하지만 잘 받을 줄은 모르는 것, 친구들의 요청에 의해 자주 상담사가 되지만 내 문제는 혼자 끌어 안아온 것은 모두 이러한 무능력으로부터 온 건 아닐까? 이를 악무는 습관과 늘 긴장해 뭉쳐있는 어깨와 목, 바이러스와의 만남에 바로 무장해제가 될 정도로 병약한 몸이 된 것 역시 이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즐거우면 사람들이 찾아온다


  약간 회복되는 기미가 보이자 나는 책을 읽고 생각하는 일, 세미나를 기획하고 여는 일, 길드다 운영 업무에 관한 일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먹고 잤는데도 기운이 나지 않았다. 대신 오랜만에 동생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는 동생을 말 그대로 업어서키웠다. 8살 터울인 동생은 꽤 커서까지도 엄마를 마다하고 나에게 업혀 다녔다. 내가 집에서 거리가 먼 고등학교를 들어간 뒤로는 사이가 꽤 멀어졌는데, 대학교를 자퇴하고 집에 와보니 동생은 나와 영 딴판으로 커 있었다.


  

 ▲ 돌아와보니 어느새 나와 영 딴판으로 커 있던 동생


   동생과 붙어 지내니 동생의 세계에 초대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밥을 먹다 서양에서 ‘00 n라 붙이는 작명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동생은 그런 작명법을 처음 들었다며 나를 도환(아빠 이름) 2’, 강아지 라우니를 또롱(라우니 엄마) 2라 부르며 즐거워했다. 나는 그런 동생이 어이없어 웃기 시작했으나 이내 그 작명법이 재밌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둘이서 식사를 중단하고 몇 분을 웃어 재꼈다. 동생이랑 있으며 내가 웃게 되는 과정은 늘 비슷했다. 처음엔 동생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곧 그 행동이 재밌게 느껴져서 함께 하다가 계속 웃고, 시간이 지난 뒤에도 그 행동이 생각나서 혼자서 또 웃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순서 매기기를 잘한다면, 동생은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일을 잘했다. ‘소확행이 각광받고 있는 요즘 작은 것에서 기쁨과 재미를 찾는 사람은 많을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이시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동생에겐 다른 사람이 보기엔 이상하고 재미없어 보이는 일도 재미있게 만드는 것, 그래서 기어코 그 사람도 동참하고 싶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내가 해야 한다”,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거나, ‘언젠가 사람들이 그 의미를 알게 되겠지생각하며 혼자 해내려고 끙끙거리는 것과는 달랐다.

   물론 어떤 시기 어떤 경우에는 나와 같은 방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방식만으로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지속적으로 모아낼 수 없다. 동양고전을 공부하며 마음이 방방 뜨는 것을 경계하고 어떤 일에도 사사로운 마음을 개입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이 꼭 삭막한 삶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공자는 멀리서 뜻을 함께 하는 사람이 찾아오니 기쁘다고 했지만, 어쩌면 공자가 누구보다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멀리서라도 뜻을 함께하기 위해 공자를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바이러스와 친밀해지는 진귀한 경험


▲길드다와 함께 떠난 베트남 여행, 매일 아침 수영장을 만끽하던 날들

  긴 기간 아프고 회복하면서 내가 세계를 어떻게 인식해왔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공동체에서 지내면서도 주변을 전쟁터 같다고 느끼고,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세상을 얼마나 척박하게 인식해왔는지를 보여준다. 나의 자랑이었던 근육은 다 빠졌고 여전히 체력을 회복하지 못해 골골거리고 있지만, 이 생활이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사실 약간 재밌다.)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기쁨과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꺼내 들어야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경험이 진귀하기 때문이다.

   간염을 앓은 일은 분명 몸 기능의 저하를 가져 주었으나, 그것이 곧 내가 세계와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친밀하고 더 적극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혹은 만나기 위한 시간이기도 하다. 아니 어쩌면 내게 꼭 한 번쯤 필요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와 그의 제자가 이야기를 나눈 대담집을 읽다가 반가운 구절을 발견했다. 마치 나의 병상 경험을 과학으로 풀어놓은 듯한 이들 대화의 일부를 지면에 옮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면역 체계는 어떤 낯선 것에 반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자기self를 인식해야 한다고 쓰셨었어요. () 필립 J.힐스의 () 논문은 당신이 토론하는 내용과 잘 들어맞습니다. 이 논문에는 몸이 아프기 위해서는 한 개의 박테리아와 친근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쓰여 있어요. 달리 말하자면 감염이 되기 위해서는, ”공격당하는 세포들이 증진되는 박테리아들을 실제로 도와주어야 하며,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실수라고 가정한다는 거지요

-  사이어자 N. 구디브, 『한 장의 잎사귀처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