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슈 오피스 인터뷰: 소탐대실을 주의하세요.
김지원(길드다)
어느덧 봄기운이 만연한 3월. 1월부터 고은의 간염과 내부 워크숍 등으로 정신없는 일정을 보내던 중, 길드다는 작년 성황리에 끝난 비학술적 학술제 네트워크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무릇 네트워크란 1년에 한 번 반짝 행사를 통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식을 공유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자진해서 네트워크의 소식을 수집하고,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첫 번째 인터뷰이로 최근 새로운 사무실을 얻고, 월간 《디자인》에도 실리고,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과 게임을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자칭 ‘다학제적 스튜디오’ 티슈 오피스를 만나러 노량진으로 갔다.
나 오랜만이에요. 티슈가 디자인/제작 한 웹을 통해 공개되었던 2020 비학술적 학술제가 엄청 옛날 일 같아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티슈 오피스(이하 ‘티’) 바쁘게 지냈습니다. 2021년을 기점으로 네 명의 멤버 모두가 전업으로 티슈 오피스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이후로 좋은 기회에 사무실을 얻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전업이다 보니 월급을 가져가기로 약속했고, 그러다 보니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길드다도 아시다시피 현재 일민미술관과의 협업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고, 최근엔 공모사업 준비도 했어요.
지금까지 길드다에서 티슈 오피스에 포스터, 웹사이트 등을 의뢰했다면 최근엔 반대로 티슈 오피스에서 만드는 게임에 길드다가 텍스트를 만드는 작업을 의뢰받았다. ‘주역’을 모티프로 하는 게임이라, 아무도 주역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길드다가 이걸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문탁 네트워크 등 주변의 도움을 받아 책을 읽고 텍스트를 작성하며 재미있는 경험이란 생각을 했다.
나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티슈 오피스가 새롭게 만든 사훈이 있다는 걸 봤어요. 사훈이 일반적인 회사들과 다르게 독특하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뭔가 내부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티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2021년부터 티슈 오피스는 전업 직장이 되었어요. 그런 직장에 걸맞게 티슈도 올 초 우리의 목표를 정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목표 매출액, 큰 방향성 등을 위주로 잡았죠. 그리고 그에 맞게 지원 사업을 알아봤어요. 사회적 기업, 보드게임, 온라인 게임…. 많은 종류의 지원 사업이 있었고, 이 중 우리의 방향성에 맞는 몇 가지 지원 사업을 통해 구체적인 연 매출 목표를 잡고 진지하게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를 하다 보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왔어요. 아시다시피 저희 멤버들이 가진 능력(건축, 제품, 그래픽 등)이 다양하고, 우리가 하는 일이 전방위적이잖아요. 그런데 지원 사업은 특정한 전문성과 비전을 요하다보니, 우리의 다양한 가능성보다는 특정 콘텐츠에 치중해서 사업 전반을 구성하게 되더라고요. 각 콘텐츠는 그럴싸하고, 말이 되는 것 같은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런 질문이 나왔어요. “우리 이거 맞는 거야?” “이게 지원 사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거야?”
나 그래서 사훈을 다시 정한 거군요.
티 맞아요. 지원 사업의 마감을 이틀 앞두고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다가 멈췄죠. 연 초에 티슈 오피스 전체가 사주를 본 적이 있어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부근에 계시는 오광탁 선생님이라는 용하신 분이었는데, 그때 이분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소탐대실하지 말고, 기반부터 다지라”는….
나 제가 얼핏 듣기로 지원하려던 규모를 생각하면 ‘적은 것을 탐하는小耽’ 것은 아닌 것 같던데 어쨌든….
티 될지도 모르는 사업을 영혼 없이 준비하다가 멤버들의 욕망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다면 ‘크게 잃는大失’ 것은 확실하죠. 그래서 모두가 합의한 언어로 사훈을 적고, 이걸 우리의 최소 원칙으로 잡자! 이렇게 되었죠. 그 길로 지원 사업은 접었습니다.
나 다음날에 후회는 없었는지.
티 모두 행복해했습니다. 사실 사무실을 얻은 뒤 그 짧은 몇 개월 사이에 우리가 ‘고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 자신의 기준이 아닌 외부의 기준에 의해 일을 하다 보니 수동적이 되고.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합의한 언어가 있으니 불안함이 오히려 해소되었어요. 물론 통장 잔고를 보면 다시 불안함이 슬그머니 올라오지만, 그런 불안함이 올라올 때조차 “사훈을 생각해!”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도구가 생긴 거죠.
나 금지 강령이 매우 세게 느껴지던데요. 돈을 벌기는 벌겠다는 건지, 굶어죽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웃음).
티 그래서 모든 규칙과 법에는 ‘예외 조항’이 있잖아요?(웃음) 우리가 사훈을 대하는 방식은 ‘정해진 사훈을 무조건 지키자’는 것보다는, ‘예외가 발생할 때 사훈을 바꾸자’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끊임없이 예외 조항을 덧붙인다는 것은 사훈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이고,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사훈이 왜 있느냐? ‘0’에서부터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미 우리가 고민해온 과정을 사훈이 표현해 주고 있는 거죠. 최근 친구를 통해서 직관적으로는 사훈에 어긋나는 것 같은 일이 들어왔어요. 특별히 고민할 거리는 없고,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종류의 일이었어요. 그럼 사훈에 부합하지 않으니 하지 말아야 하나? 그러나 길드다도 잘 알겠지만 ‘친구’의 일, ‘관계성’을 고려하는 일이라는, 더 미래지향적인 예외가 있잖아요. 그런 예외들이 지금 막 생겨나고 있습니다.
인문학 ‘회사’인 우리 길드다에도 이런 사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으로 전환한지 고작 몇 개월 사이에 티슈가 한 고민들은 지난 3년간 우리 길드다가 지속해온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그런 고민들을 막 시작한 이들의 기쁨이 인터뷰를 하는 나에게도 전염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지난하게 토론하고 이야기해 온 시간이 그들의 열띤 몇 개월 속에도, 이 사훈에도 담겨있다. 그래서 나는 힘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자신들이 “고였다”라는 이들의 표현(이 표현이 얼마나 중요하면 사훈에도 등장한다)은 역설적이다. 사실 진짜 고인 사람은, 자신이 고인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 정리할 때가 되었는데요. 사훈을 보면 ‘세미나’라거나, ‘게임 타임’ 같은 구체적인 계획이 담겨 있더라고요. 사실 제가 가장 궁금했던 건 구체적인 2021 계획이었습니다. 비학술적 학술제 네트워크를 더 구체적인 교류와 교차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설명을 좀 부탁드려요.
티 우선 2021의 중요한 계획 중 하나는 ‘가상공간 플랫폼’을 구축하는 자체 프로젝트에요. 코로나 이후 메타버스(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의 합성어)가 도래했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활은 이른바 ‘현실 세계’라고 일컬어지는 물리적 세계에 단단히 발붙여야만 하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요. 이런 조건이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가 온라인 공간에 자체적으로 새로운 땅을 만들고, 이것의 필요성이나 수요에 대한 연구를 더 깊이 해볼 생각이에요.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말하자면 첫째로 우리가 게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기업인만큼, 게임 R&D 모임이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보드게임을 사서 플레이해보고, 크리틱 하는 시간을 매주 가지기로 했고, 이미 진행 중이에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인원이 모이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지인들을 초대하기도 해요. 조금 더 본격적인 이벤트로 운영하게 된다면 코로나 이후가 되거나, 온라인으로 진행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둘째로 세미나입니다. 세미나는 길드다와의 협업 경험, 그리고 길드다에서의 세미나 경험이 큰 작용을 했어요. 우리는 작업의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이고, 좋은 메시지를 찾기 위해서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죠. 그래서 우리의 관심 주제를 가지고 자체 세미나를 열고, 길드다나 다른 공동체, 혹은 새로운 사람들과 공부하는 모임을 계획하고 있어요. 제인 맥고니걸의 『누구나 게임을 한다』라거나, 길드다 미학 세미나에서 함께 읽기도 했던 히토 슈타이얼의 최근 번역된 『면세미술』, 혹은 구글의 플랫폼에 대한 비평이나 분석을 하는 텍스트들을 읽으면 어떨까 논의 중입니다. 물론 텍스트뿐만 아니라 공부의 일환으로, 사람이나 공간을 찾아가는 프로그램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나 여유가 된다면 티슈 오피스에서 기획하는 공부나 이벤트, 프로그램에 길드다 뿐 아니라 우리 네트워크가 적극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리가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공부가 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럼 마지막으로, 길드다 <아젠다> 구독자들에게 한마디.
티 어떠한 이유에서건 가상공간에 대해 관심이 있거나 필요한 분은 연락 주세요.
나 아, 참. <아젠다> 어떻게 읽고 계신지, 뭐가 제일 재밌었는지도 좀 얘기해 주세요.
티 볼 때마다 놀라워요. 꾸준히 생산한다는 사실이. 제일 재미있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쿠바 의사선생님 이야기예요.
너무하다. 나도 해완의 글이 재미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하러 온 나의 간절한 눈빛을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티슈 오피스. 그래도 첫 인터뷰가 즐거웠으니, 나도 소탐대실 않겠다! 티슈 오피스의 더 많은 소식과 가상공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tissueoffice.info)로 접속해보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