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문의 2021
정건화 (고전비평공간 규문)
글쓴이 소개 : 1993년 12월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강화도에 있는 대안학교를 졸업했고, 지금은 혜화동의 ‘규문’에서 책 읽고, 글 쓰고, 밥해 먹고, 청소하고, 동료들과 수다 떨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밥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연구실에서는 카레와 계란말이 장인으로 불린다. 허세 없는 중년남성이 되는 것(정말 드물고도 귀하다!), 노동하지 않는(정확히 말하자면 노동/여가의 구분이 없는) 삶을 사는 것, 꾸준히 글을 쓰는 것. 이것이 현재 내 꿈(?)이다. 공부가 이를 실현시켜 주는 한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본 소개문은 글쓴이의 저서 『청년, 니체를 만나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1. 고전비평공간 규문 since 2013
〈아젠다〉의 구독자들 중에는 ‘고전비평공간 규문’을 아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 전혀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알고 계신 분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은 이름 정도만 접해본 정도이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잠깐 소개드리자면, 규문은 창경궁과 성균관 근처에 위치한 자그마한 인문학 공부 공간입니다. 규문에서는 동서고금의 다양한 지식을 횡단하는 공부를 통해 각자의 삶과 삶의 조건에 대해 질문하고, 실천적 지식의 다양한 비전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규문 청년들의 세미나
얼마 전에 어느 책을 읽다가 규문에서 하고 있는 공부의 성격이 고대 철학학파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 그리스-로마의 여러 철학학파들에게 인식이란 주체의 자기 변형을 수반하는 삶의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적 담론들을 다루는 것이기 이전에 남다른 실존의 양식을 조형해내는 것이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이들에게 엄격한 공동생활과 금욕수행은 철학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규문은 ‘~주의’를 표방하고 있지 않고 딱히 구성원들에게 금욕적인 수행을 강제하지도 않지만(권장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지식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규문은 텍스트에 대한 정교한 독해만큼이나 그것을 자기 문제의식으로 소화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그리고 공부를 충실하게 하는 것과 연구실에서 이뤄지는 공동생활에 기꺼이 마음을 내어 참여하는 것이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통한 삶의 변형을, 아니 다른 삶의 실험으로서의 공부를 함께 시도하고 있습니다.
2. 글쓰기를 통한 자립
문탁네트워크나 감이당·남산강학원 같은 비슷한 성격의 공간들에 비하자면 2013년에 만들어진 규문은 신생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작년의 청년 네트워크 축제 ‘비학술적 학술제’에서도 밝혔듯) 규문에서는 지난해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청년들이 팀을 이뤄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와 더불어 조금은 뒤늦은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제 주관적인 인상에 기초한 판단이지만) 길드다는 직접 기획한 다양한 세미나와 프로그램들을 통해 신선한 담론들과 구체적 결과물들을 생산해내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고, 또 어떤 팀은 논문을 써내는 일을 주된 활동으로 삼고 있는 것 같고, 또 다른 팀은 끈끈한 공동체 생활이나 몸을 쓰는 여러 활동들을 공부에 접목시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의 색깔은 무엇인가? 무엇을 우리의 활동으로 삼아야 할까? 요런 고민들 말이죠.
그런데 어쩌면, 저희는 그동안 하고 있던 일들 말고 무언가 새로운 ‘활동’을 개발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규문에서의 공부는 글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활동’이라고 하면 무언가 대외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손에 잡히는 결과물들을 생산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러나 돌이켜보면 공부를 하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줄곧 활동이고 실천이었습니다. 공부와 글쓰기는 자기 삶의 문제를, 자신이 놓인 시대적인 조건을, 그리고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사고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합니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을 치열하게 겪어내는 과정이 사유와 글쓰기의 재료가 되고요. (사실 길드다의 고은님이 ‘규문은 도제 시스템이잖아요? 다들 한 10년 정도씩은 보고 가는 거 아닌가요?’하고 무심하게(?) 던져준 말도 큰 힌트가 되었습니다^^)
활동이란 꼭 책 바깥으로 떠나는 것일까
물론, 글쓰기를 통해 자립을 모색한다는 것이 출판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경쟁력이나 제도적 전문성을 갖추자는 것은 아닙니다. 글쓰기를 화폐적 교환관계로부터 벗어난 배움의 과정으로 만들고, 또 각자가 생산한 글들이 자본이나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 네트워크들을 형성하는 매개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그러자면 많은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저희는 우선 글을 쓰는 신체를 만드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올해부터 청년 네 명이 모두 각자의 관심사와 문제의식에 맞는 텍스트와 주제로 규문 홈페이지 ‘규문톡톡’ 코너에 규칙적인 연재를 시작합니다. 각자 글쓰기의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들 규칙적인 리듬으로 공부를 하고 글쓰기를 일상의 중심에 위치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의 글쓰기 일정을 공유하고, 적극적으로 코멘트를 주고받고, 서로의 일상을 집요하게 감시하는 것으로 팀워크를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아젠다〉 독자 여러분들, ‘규문톡톡’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맥락 속에서 최근에는 문자문화의 시대(이반 일리치에 따르자면 학자식 읽기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읽고 쓴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나아가 학자식의 아카데믹한 읽기와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뉴 미디어 세대인) 우리는 어떠한 지성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또 새롭게 발명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고민이 어떻게 구체화될지, 그리고 어떤 작업이나 결과물로 이어지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네요.
3. 뇌산소과(雷山小過), 규문의 2021
마지막으로 규문의 구체적인 2021년 계획을 전해드리고 싶네요! 작년 연말, 코로나 신규확진자 급증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저희는 2021년 규문의 운세를 알아보기 위해 약소하게 주역 점을 쳐 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바로바로 주역의 62번째 괘인 ‘뇌산소과(雷山小過)’였습니다. 규문 ‘주역 세미나’ 팀에 따르면 뇌산소과는 번개가 내리쳐서 혼란스러운 가운데 산은 그 자리를 지킨다는 뜻으로, 큰 변화가 오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바탕은 그대로이니 변화에 휘둘리지 말고 사소한 일들을 신중히 하며 내실을 탄탄히 하라는 의미입니다.
확실히 올해 들어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각자 새 연재를 시작했구요, 3월에는 규문의 청년들이 직접 기획한 따끈따끈한 세미나들도 시작됩니다(동시대적 질문들 속에서 장자를 독해하는 청문회 세미나, 서양고대철학의 기원을 탐사하는 뉴 비기너스 세미나,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맞이하여 인류학-생태학적 관점으로 ‘인간’을 되묻는 인-생 세미나. 역시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아직 구체화된 없지만 …… 비학술적 학술제의 네트워크를 이어나갈 세미나에 대한 고민도 시작단계에 있습니다. 또 주로 ‘대표님’이 전담하시던 회계와 각종 공간관리 등을 청년들이 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이러한 변화들을 맞이하는 만큼, 이리저리 휘둘리지 않으려면 세심한 돌봄과 주의와 관심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앞으로 규문의 행보를 지켜봐주시고요, 길드다와도 활발한 협업을 기대하겠습니다~~
규문 청년들의 2021년을 기대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