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분노 : 샤를리 엡도 습격과 사뮈엘 파티의 죽음에 부쳐

 차명식 (길드다)









   지난달의 일이다. 10월 16일, 프랑스 이블린에서 교사 사뮈엘 파티가 참수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18세의 체첸 출신 무슬림 난민 압둘라흐 안조로프였다.

   안조로프는 사뮈엘 파티가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했기에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찾아보니 파티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면서 과거 ‘샤를리 엡도’ 신문사가 낸 무함마드의 풍자 만평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했다. 샤를리 엡도, 샤를리 엡도……기억하기로 그 신문사는 무함마드의 만평 때문에 몇 년 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테러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한참동안 떠들썩했던 것이 생각났다. 호기심이 동해 샤를리 엡도 사건을 검색했다. 그러자 그 사건과 연계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목록이 주르륵 떠올랐다. 


   2015년 1월 7일, 프랑스의 신문사 샤를리 엡도 테러. 경찰과 시민 12명 사망.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일대 6곳에서 동시 테러. 시민 127명 사망, 400여명 부상,

   2015년 12월 31일, 독일 쾰른 중앙역에서 500건 이상의 강도와 집단 성범죄 동시발생.

   2016년 7월 14일, 프랑스 니스에서 테러. 86명 사망, 400여명 부상.

   2016년 7월 26일, 프랑스 루앙 인근에서 가톨릭 사제 참수.

   2016년 12월 20일, 독일 베를린에서 테러. 최소 12명 사망, 50여명 부상.

   ……

   2020년 10월 16일, 프랑스 교사 사뮈엘 파티 참수.


   끝없이 이어지는 목록을 보며 기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자료들을 좀 더 검색해보기로 했다. 관련 기사에는 ‘이슬람의 야만성’을 두려워하거나 조롱하는 숱한 댓글들이 있었고 종종 정우성*을 비꼬는 댓글들도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형을 교수형이나 약물형으로 바꾸는 가운데 일부 이슬람 국가들만 율법을 근거로 참수형을 유지한 탓에 어느새 참수 = 이슬람식 처형이 되어버렸다는 토막 상식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슬람 국가 정부에서 행하는 참수형과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이 행하는 참수의 차이를 써놓은 글도 보였다.


   “합법적으로 시행되는 참수형은 그래도 죄수가 느낄 고통을 신경 써서 마약으로 공포심과 고통을 잊게 한 뒤 큰 칼로 한 번에 죽입니다. 고통스러워할 겨를도 없어요. 그런데 저런 테러단체가 하는 참수는 작은 칼로 천천히 목을 썰어 죽….”


   거기까지 읽고서, 황급히 다음 글로 넘어갔다. 프랑스의 어떤 이슬람 성직자가 울먹이며 인터뷰하는 유투브 영상이었다. “이건 이슬람이 아니다, 이건 종교가 아니다. 이건 극단주의이며, 이슬람의 독이고 질병이다…모든 이슬람 모스크가 사뮈엘 파티의 죽음을 애도해야 한다.” 


   그로부터 2주일 뒤, 10월 29일, 프랑스 니스의 성당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 브라힘 아위사위에 의해 세 사람이 더 살해당했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10월 31일, 오스트리아 빈 일대 6곳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 쿠이팀 페이줄라 등이 벌인 테러에 의해 네 명이 사망하고 이십 여명이 다쳤다.


   나는 문득, 그들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곧이어, 그들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결국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그 혼란스러움을 걷어내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정우성은 한국 사회가 난민들에게 보다 포용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혔다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두려움 : 괴물적 이슬람에 대하여


   우선 두려움과 증오에서 시작하자.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가부터. 


   서구 세계에 있어 괴물로서의 이슬람은 사실 뿌리 깊은 것이다. 중세 시대, 유럽에 있어 이슬람 제국들은 가장 강대한 적수였다. 이슬람 제국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문명과 로마에서 이어지는 서방 문명의 사잇길을 차지하고 그 위를 오가는 두 세계의 지식과 물자를 한데 아울렀다. 그 결과 중세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이슬람 제국들은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인문학적, 과학적 지식들을 일궈냈다. 유럽 문명의 대영웅 샤를마뉴 대제는 이슬람 세계의 북진을 막아냈다는 이유로 그 명성을 얻었고, 아홉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유럽에 있어 이슬람 세계는 언제나 잠재적 위험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 이후 이 구도는 역전되었다. 최후의 이슬람 제국 오스만투르크가 몰락하면서 주도권은 완전히 서구 문명에게 넘어갔다. 그 뒤 제국주의의 시대를 거쳐 세계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두 진영의 싸움터로 양분되었다. 과거 영광을 이룩했던 이슬람 세계의 국가들은 두 거인의 입김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슬람이라는 이름이 다시 떠오른 것은 소련이 거꾸러지고 냉전이 끝난 다음이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소련이 무너졌을 때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 종말이란 곧 ‘완성’을 뜻하는 것으로, 파시즘 나치에 이어 공산주의 소련이 패망함으로써 유일하게 남은 자유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 체제가 인류사의 최종적인 승자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때 고개를 저은 사람이 있었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 맞서,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주장했다. “냉전은 끝났지만, 세계는 ‘문명’으로 재편된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기독교 문명’은 이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 문명’과 …… 그리고 무엇보다 ‘이슬람 문명’의 도전을 받을 것이다.”




   헌팅턴의 주장을 선견지명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서구 세계의 자기실현적 예언의 산물로 볼 것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이슬람 세계와 그 주민들은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서구 세계에 있어 언제나 철저한 타자他者로, 이해할 수 없는 외부의 존재로 자리해왔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사이에는 어떤 이미지의 전환이 있다. ‘두려우면서도 신비로이 유럽을 유혹했던 사막의 문명’은 오늘날 ‘도통 어떤 사고 구조를 가진 건지 알 수가 없는 가난하고 난폭한 테러리스트’들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그런 전환에도 불구하고, 두 이미지 모두 이해의 대상이 아니란 점에서는 일치한다. 결코 우리와 섞일 수 없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 그럼에도 우리에게 너무 가까이 있는 것. 서구 세계에 있어 이슬람은 수 세기에 걸쳐 그러한 타자였고, 오늘날에도 그렇다. 당연히 그것은 공포와 증오를 낳는다. 


   자, 나는 지금부터 유럽인들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나는 프랑스, 독일, 아무튼 서유럽 어딘가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이다. 나는 평균적인 집안에서 보통으로 일반 교육을 수료했고, 인권 개념과 민주주의 체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 나라에는 무슬림 이주민들이나 난민들이 아주 많고, 우리 집 주변을 걷다가 무슬림으로 보이는 사람과 스쳐 지나는 일도 그다지 드물지 않다. 동시에 나는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 간격으로 자국 내에서, 때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이슬람 테러의 소식을 듣는다. 그런 내 앞에는 내가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지적하려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무슬림들이 극단주의를 신봉하진 않아.” -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른 문화와 최선을 다해 어울리려는 무슬림들도 있다고.” - 그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무슬림들도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 그래?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은 모두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 정말?


   “이봐, 네가 느끼는 공포에는 ‘실체’가 없어! 그건 이슬람에 대한 네 ‘편견’에서 비롯된 거야!” - 내 생각에, 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가상의 상대에게 다만 두 단어를 꺼낸다.


   샤리아.

   와하비즘.

 

 



분노 :  서구에 복수할 권리에 대하여 


   사실 샤를리 엡도는 총격 사건이 있기 전에도 숱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신문사였다. 그들은 ‘금기 없는 풍자’를 목표로 온갖 종류의 국가, 정치진영, 종교, 사건 등을 만평으로 그려냈으며 그 결과물 가운데에는 위트 있는 풍자라기보다 천박하고 원색적인 모욕에 가까운 것도 꽤 있었다. 심지어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지진을 비꼬며 압사당한 희생자들을 파스타와 라자냐에 빗대기도 했고 바다를 건너다 익사한 난민 아이를 조롱하는 만평을 그리기도 했다. 때문에 무슬림 아닌 이들 가운데에도 샤를리 엡도를 곱지 않게 보는 이들은 적지 않았다. 다만 그럼에도 단순히 그들을 비난하거나 고소하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과 총질로 열두 명을 쏘아 죽이는 것은 여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랬기에 프랑스인들은 샤를리 엡도의 평소 좋지 못한 평판에도 불구하고 “내가 샤를리다”를 외치며 분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무슬림들은 비난이나 욕설에서 끝내지 않고 총을 쏘고 폭탄을 터뜨렸을까. 그것은, 이슬람이 그들에게 있어 단순한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그만큼 소중한 것이라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오늘날 바로 이 순간에도 이슬람은 종교를 넘어선 삶의 양식 그 자체로서 무슬림들의 삶의 형태와 의미를 규정하고 있으며, 우리는 ‘샤리아’를 통해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샤리아란 이슬람의 성전 쿠란과 무함마드의 전승록 하디스, 그 외 율법학자들과 정치가들의 해석 등을 바탕으로 한 이슬람의 종교 율법이다. 이것은 무함마드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닌 후대 해석의 결과물인데, 특기할 점은 오늘날까지도 적지 않은 이슬람권 국가들이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우디, 이란, 카타르, 리비아, 시리아, 쿠웨이트 등등이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쓰고 있는 국가들이며, 터키나 이집트 등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쓰고 있지 않은 국가들 역시 최근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샤리아의 도입을 요구하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샤리아는 식습관 같은 일상의 아주 세세한 영역까지 면밀히 침투하여 규정하면서, 동시에 참수, 투석, 손발절단 등 전근대적인 신체형을 실시하고 있으며 여러 소수자, 특히 여성에 대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강도 높은 차별을 행한다. 이것은 샤리아가 만들어진 시기 자체가 고대, 중세 시대라는 점에 기인한다. 때문에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샤리아는 그 담고 있는 내용으로 보나 신정 통치라는 활용 형태로 보나 지극히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법률 체계이다. 샤리아는 근대 이후 확립된 인권 개념과 제정의 분리를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많은 무슬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 세계에게 거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유럽 국가 내의 무슬림 난민들과 이주민조차도 해당 국가 내에서 샤리아를 자체 집행하는 민병대를 운용하거나, 시위를 통해 서구 세계 법률에 샤리아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면서 이 위협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왜 저들은 자신들의 전근대적, 야만적 가치를 우리 사회 내부로 가져오려 하는가?” 


   그 까닭은, 그들 이슬람의 세계의 파괴가 그들을 고향 바깥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세계는 그 파괴에 있어 막대한 책임을 갖는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세계는 중동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의 건립을 약속하고 지지했으며, 이후 이스라엘은 서구 세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1948년부터 오늘날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중동 이슬람 세계와 전쟁을 벌이며 일대의 국가들을 초토화했다. 또한 20세기 중반 미국의 CIA는 소련에 맞서 중동 지역의 원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암살과 테러를 포함한 정치적 공작을 벌여 그들 국가를 혼란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오늘날, 지옥도가 된 고향에서 빠져 나온 무슬림들의 커뮤니티는 서구 사회에서 고립된 채 영락하고 있다. 그들의 값싼 노동력은 필요로 하지만 그들을 사회에 통합시키기 위한 비용은 감당할 자신이 없는 서구 세계의 방치 아래, 이슬람 커뮤니티들은 주류사회와 분리된 채 더욱 폐쇄적인 형태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생존의 방법을 모색한다. 이 때 샤리아가 바로 그 수단이 되며, 와하비즘 역시 같은 이유로 자라난다.


   와하비즘 - 그것은 이슬람의 두 종파 중 수니파의 한 계파로,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근본주의적인 계파이다. 가장 가혹하고 가장 전근대적인 통제와 차별을 행하는 이 계파는 사우디아라비아 왕가가 그들의 독재정치를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급격히 자라난 것이다. 와하비즘은 왕가의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서구 세계 내 이슬람 커뮤니티들의 모스크와 학교에서 재생산된다. 와하비즘을 위시한 근본주의 이슬람은 차별받는 소수자이자 방치된 존재로서 자라나는 젊은 무슬림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제공하여, 서구 주류 사회와 이슬람 커뮤니티의 대립을 심화시킨다. 

 

 



죄책감과 무력감과 혼란과 불안


   물론 이러한 이야기는 모든 서구인들과 모든 무슬림들(사실 이 두 범주도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서양인들 가운데에도 이슬람 그 자체를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으며, 무슬림들 가운데에도 서구세계에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소속된 국가, 나이, 젠더, 정치적 성향, 경제 상황, 속한 이슬람 계파 등 수없이 많은 차이들이 이 문제에 대한 수없이 많은 관점과 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사실이 있다. 유럽인들이 느끼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 - 거기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분명한 실체가 있다. 그리고 그 근본주의가 자라나게 한 토대에는 유럽인들의 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기에 무슬림들의 설움과 분노 - 거기에도 분명한 까닭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쌍방이 모두 갖고 있는 정당성을 가지고 서로를 노려본다. 양쪽 모두에게 정의가 있을 때, 질문은 누가 정의로운가가 아닌 두 정의 중 누구의 정의를 더 우선해야 하는가로 바뀌며, 그 대답은 대개 자신이 쥐고 있는 정의로 귀결된다. 




   나는 무슬림이 아니며, 나는 유럽인도 아니다. 내가 속해 있는 한국 사회에는 아직까진 이 문제가 그리 큰 파급력을 갖지 못한다. 때문에 나는 어스름에 서서 침묵 속에 그 간극을 바라본다.  


   나는 유럽인들이 느낄 공포를 이해한다. (그렇게 믿는다)

   나는 무슬림들의 설움과 분노를 이해한다.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죄책감과 무력감과 혼란과 불안을 느낀다.


   그렇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나는 모든 종교와 믿음은 동등한 것이며 편견을 갖지 말고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왔고, 때문에 내가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이란 종교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은 나에게 죄책감을 느끼도록 한다. 

   또한 나는 무력감을 느낀다. 나는 무슬림들의 설움과 분노를 이해하지만, 또한 그것이 ‘무고한’ 이들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지는 현실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또한, 그렇다면 그 폭력 외에 무슬림들이 택할 수 있는 수단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아직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기에, 그는 나에게 무력감을 느끼도록 한다.

   이 모든 것, 내가 배워온 선험적 가치와, 내가 직시하고 있는 현실의 불협화음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머지않아, 어쩌면 이미, 이슬람을 둘러싼 ‘정당한’ 두려움과 ‘정당한’ 분노를 포함한 그 모든 것들이 한국 사회의, 내 발밑의 현실이 되리란 사실이 나를 불안하게 한다.


   이것은 해결하기 위한 가장 간단한 방법, 그것은 지금 내가 느끼고 이해하는 그 모든 것들 중 일부를, 혹은 전부를 무시해버리는 것이다. 무시하고 그저 이슬람을 혐오하거나, 무시하고 그저 이슬람을 두려워하는 이들을 차별주의자로 몰아가거나, 아니면 아예 시선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럴 수가 없다.


   때문에 나는 아직 침묵하고, 고민하고, 곱씹을 뿐이다.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