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모임, 도전!
김고은 (길드다)
코로나 바이러스 2차 확산으로 길드다의 프로그램이 많이 축소되었습니다. 많은 인원이 모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이미 진행되고 있던 프로그램들을 중도에 취소할 수는 없었습니다. 특히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던 <GSRC : 99%를 위한 페미니즘>과 <길드다 강학원 : 포스트휴머니즘>이 그랬습니다. 마무리 행사인 오픈 세미나와 에세이 발표를 앞두고 있었거든요. 결국 길드다는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화상통화를 이용한 비대면(Untact) 세미나! 여태까지 길드다에게 ‘세미나’란 여러 사람이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크고 작은 시그널을 주고받는 네트워크의 장(場)이었습니다. 비대면 환경에서도 과연 네트워크 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도 무언가를 함께 나누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1. <GSRC : 99%를 위한 페미니즘> 오픈 세미나
4명의 청년 페미니스트 연구자의 이야기를 듣고, 페미니즘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함께 이야기 나누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비대면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도, 화상회의를 기술적으로 관리하는 일도 처음이라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요. 그러나 저의 당황스러움과는 별개로 오픈 세미나는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오프라인으로 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그 아쉬움들은 오히려 오픈 세미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었음에도 참가자들에게 울림을 주었다는 것을 반증했습니다.
온라인 세미나는 가능하지만 한계가 있다. 쉬는 시간에 떠들 수 없고, 소리가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서로의 반응을 관찰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세미나가 끝나고 항상 아쉬운 내가 하는 행동인 강연자님들께 따로 질문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스무 명에서 서른 명 남짓한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다. 모두의 집중도가 높아 보였고, 서로를 '탐구하려는 자세'가 갖추어져 보였다. ―참가자의 오픈 세미나 후기 中
왠지 차갑게 느껴지는 온라인 포맷으로 오픈 세미나를 진행해도 분위기가 따뜻하게 달궈질 수 있더군요. 세미나 도중 청년 페미니즘 연구자이자 싱어송라이터인 화원의 노래에 맞춰 함께 호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픈 세미나를 갈무리하며 참가자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감명 받았다며, 각자의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저는 세미나 진행을 마치고 녹초가 되었지만, ‘어쩌면 온라인에도 하나의 페미니즘 장이 형성될 수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2. <길드다 강학원 : 포스트휴머니즘> 에세이 발표회
<길드다 강학원> 세미나의 참여 멤버들은 10주가 넘는 세미나를 끝마치면서 그동안 공부했던 것과 자신의 삶을 연결하기 위한 에세이를 쓰게 됩니다. 에세이를 쓰는 과정은 각자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을 텍스트와 더불어 좀 더 날카롭게 벼릴 수 있게 해줍니다. 에세이를 직접 읽고 다른 참가자들이 그에 대해 질문하는 에세이 발표회는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시간이자 또 하나의 담론을 생성하는 시간입니다.
비대면으로 에세이를 발표회를 진행하는 것은 비대면으로 오픈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 보였습니다. 열 명이 넘는 멤버들의 에세이를 오랜 시간에 걸쳐 읽다보면 체력적으로 금방 지치게 될 것 같았습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오픈 세미나보다 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우선 장시간 이어질 온라인 글 발표로 인한 피로를 줄이기 위해 글의 마감 시간을 하루 앞당겼습니다. 멤버들이 글을 미리 읽어보고, 또 글에 대한 질문도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보통 마감일에 밤새 글을 써서 제출하는 멤버들에게는 쉽지 않은 요구사항이었지만, 에세이 피드백 조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은 끝에 모두가 하루 전날 글을 제출했습니다. 덕분에 에세이 발표회 당일에 시간도 밀리지 않고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었습니다.
비대면 에세이 발표회에서 사람들은 오프라인과 다른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았습니다. 움직이는 소리, 집중하는 공기가 없는 대신 몇 가지의 주어진 이모티콘과 발표자가 말하는 도중에도 분명하게 전달되는 채팅을 통해 의사소통이 이루어집니다. 박수 소리의 크기나 속도 대신 화면에 보이는 얼굴들의 표정으로 분위기를 읽습니다. 여러 명의 얼굴을 동시에 마주하는 뷰는 좀 낯설게 느껴지지만, 모두의 리액션을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어서 색달랐습니다. 참가자들은 채팅창에서 글 외의 요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쉬는 시간에 나왔던 노래가 좋다며 노래 제목를 묻기도 하고, 발표자가 놓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비대면 모임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장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요? 비대면의 장에서 무엇을 생산해내게 될지, 앞으로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